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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영 Jul 19. 2020

지난 일기장

어김없이 한심한 하루를 보낼 때면, 채울 수 없는 허탈감에 써내려왔던 일기장을 꺼내보곤 한다. 이 새벽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나는 또 하루를 제때 마무리 짓지 못하고 다음날까지 빌려 애써 위로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일기장에는 슬픔과 근심들이 가득하다. 그러므로 새벽은 다시 지나온 날들에 대한 깊은 감상과 반성으로 이어지고 만다. 


근 2년 간의 일상과 상념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일기장. 워낙 게으른 탓에 매일 같이 써내려가진 못했다. 그러나 띄엄띄엄 남겨진 내 삶의 파편들이 망각의 경계 너머로 쏟아지면, 나는 모든 걸 놓은 채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찬찬히, 나는 잠들어 있던 지난 날들을 되돌아 보고 말았다.  


나는 참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새로이 맞이할 것들을 그렇게 두려워했다. 스쳐간 당신들에게 미움받을까 가슴 졸였으며, 어설픈 말과 행동으로 멀쩡한 것들을 다치게할까 근심하였다. 도전은 설렘이 아닌 두려움에 가까웠다.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이, 나에게는 커다란 고민거리이자 어려운 일이었다.


언젠가 새로 아르바이트 일을 시작했을 때도, 친구와 사소한 말다툼을 벌였을 때도, 시험 전 날에 공부를 완벽히 다 하지 못했을 때도, 심지어 살아가는 것 자체에 대한 막막함을 느꼈을 때도 나는 늘 근심하고, 힘들어했다. 


나의 하루는 늘 부족했다. 목표하던 것을 다 해내지 못했고, 의미없이 흘려보낸 시간들이 많았다. 텅 빈 나날들, 초점은 작은 나보다는 잘난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또한 제대로 해낸 일 하나 없이, 쓸 데 없는 생각만 많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럴수록 해야하는 일에 집중하지 못했고, 대신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에 더욱 몰두하였다. 


그럼에도 때로는 감사하기도 했다. 부박한 삶 속에서도 내 손을 잡고 힘이 되어주는 이들에게, 그리고 이따금씩 찾아왔던 믿을 수 없는 행운들에. 무엇보다도 비루한 존재를 애써 뒷받침해주는 가장 소중한 존재들에게. 

 

새벽의 슬픈 감상을 마치고 또 하나의 일기를 남겼다. 여타 다른 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말들이었다. 또 한심한 하루를 살았으며, 무언가 헛헛해 잠 못 이루고 이 난리를 부리고 있다고.


그러나, 돌아보면 분명 나는 이 써내려 온 흔적들 덕분에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심한 존재였음에도, 그 많은 고민들과 실수들을 애써 남겨두었기 때문에 달라지려는 몸부림이라도 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일기는 내게 용기를 주었다. 그 때의 나를 괴롭혔던 온갖 고민들과 문제들이, 이윽고 다음 페이지에서는 별 일 아니게 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또 다시 벅찬 하루를 살아갈 일말의 희망을 얻게 된다. 그것이 뭐 거창한 것은 아니었더라도, 하루의 말미에 남겼던 몇 줄 짜리 짧은 글이 큰 위로를 건네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길어진 하루의 끝, 드디어 일기장을 덮고 새 하루를 잠자코 기다린다. 분명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일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하루를 남겼고, 무언가 써내려 갈 또 다른 하루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 사실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내일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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