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들이 많았다. 존재만으로 슬펐던 날들.
나는 나로 살아가는 게 한없이 부끄러워서, 이따금씩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곤 했다. 살아간 지 만으로 23년 차, 아직도 나는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세상엔 잘난 사람들이 참 많았다. 춤 잘 추는 사람, 말 잘하는 사람, 노래 잘하는 사람, 요리 잘 만드는 사람, 잘생기고 예쁜 사람, 말만해도 빵빵 터뜨리는 사람, 운동 잘하는 사람 등등.
그러나 애석하게 나는 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냥 평범한, 아니 때로는 평균에도 아주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능력을 보이기도 했다.
혹자는 이런 내게 ‘너는 잘하는 게 도대체 뭐니?’라고 묻곤 했다. (누군지 말하지는 않겠다. 분명 찔리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 그러나 이럴 때마다 나는 정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발 끈도 잘 못 묶고, 젓가락질도 못한다. 남들 앞에서 말할 땐 손발이 덜덜 떨리고 얼굴이 시뻘개지며, 어렸을 때 수 십 만원을 들여가며 배웠던 태권도, 피아노 그 무엇도 잘 하지 못한다. (엄마 미안해) 초등학교 시절 육상부에서 잠깐 활동한 경력은 있지만 기타 다른 운동 실력은... 흡사 몸개그를 연상케하는 수준이다.
잘하는 것도 없는 주제, 남들이 뭐라고 한마디 하면 입만 삐죽 내밀고 싫은 티를 그렇게 낸다. 말싸움이 벌어질 땐 멋있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화도 잘 못 내서 혼자 삭히기 다반사다.
찌질하고, 궁상맞고. 잘난 것도 없어서 혼자 기죽어 있을 때가 많다. 방에 틀어박혀 혼자 노래듣고, 영화보고. 그러면서 한없이 우울해 하기를 수백번. 나는 정말이지 이 삶이 한없이 초라하고, 또 부끄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읽게 된 배우 박정민의 에세이 속 한 구절이 가슴 속을 파고 들었다.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
한 것도 없는데,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단다. 아무리 초라한 삶이래도 살아가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다고 하면서.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서른 넷 먹은 배우가 남긴 이 말에 난 망치로 한대 얻어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잘하는 것 하나 없는 쓸모없는 내가, 분명 어딘가 쓸 데가 있겠거니. 나를 필요로 하는 곳도 분명 이 땅 어딘가에 있겠거니. 이런 나라도 때때로 떠올리며 아껴주는 누군가가 있겠거니.
그렇다. 나는 이따금씩 밀려들 존재의 회의감에도 살아갈 이유를 찾아보고자 한다. 이 저주받은 상황을 탓하며 도망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며. 그리고 이왕이면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에게 한줄기 위로를 건네주며.
그나마 잘할 수 있는 게 글쓰기라고 생각해 이렇게 발악을 해보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봐줄지, 또 내가 이 글을 얼마나 또 오래 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간간히, 짬날 때 마다 한 번 써내려 가보려 한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함께 살아갈 당신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