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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와 결과

by 김민영 Dec 01. 2024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


크로스핏이 도통 늘지 않는다. 어느덧 반년이나 흘렀는데, 무게도, 횟수도, 시간도 하나도 나아진 게 없다. 동작을 천천히 배워보지만 정작 몸을 움직이면 급해진 마음 탓에 자세가 흐트러지고 만다. 바로 코치의 날카로운 지적이 되돌아오지만 내 몸이 말을 안 듣는 것을 어떡하나. 안 들리는 것이 아니라 듣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잘한 게 하나 없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자존감이 뚝 떨어지고 만다. 대체 나는 오늘 하루 무얼 했나. 비웃음 살만한 일들을 한 것은 아닌가. 물론 행동거지를 똑바로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나로서도 최선을 다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 최선을 다하기 위해 용을 쓰는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지는 잘 모르겠지만.


행동의 결과가 우선이 되어야 할지, 혹은 행동의 의도와 과정이 우선이 되어야 할지는 스스로의 화두이자 세상의 논쟁거리라고 할 수 있다. 애썼지만 잘 해내지 못한 나와, 그럼에도 잘 살기 위해 노력한 나 사이에는 얼마나 큰 괴리가 있는 걸까. 출근길 감상한 로메르 영화의 한 장면을 돌이켜본다. 한 슈퍼마켓에서 도둑질을 하다 잡힐 위기에 처한 여인을 도와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 혹은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일깨워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 두 친구의 격렬한 토론이 이어진다. 그들은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그중 후자를 주장한 친구가 기차역에서 돈을 도둑맞는 일화로 끝이 난다. 그 일화에서, 도둑은 살기 위해 돈이 절실히 필요했음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리고 친구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그냥 가지라고 말하고 돌아선다.


모든 행동에는 저마다의 의도와 배경이 깔려있다. 모두가 같을 수 없는, 어떤 마음과 상황 속에서 동일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야 한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 될까. 비록 나는 월등한 결과와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를 자책했으나, 그 비교 대상이 내가 아닌 남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들이 나와 같은 하루를 보낸 것이 아니니, 그들이 나보다 좋은 결과를 냈다는 사실에 분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들이 나보다 훨씬 느긋하고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 운동에 쏟을 체력을 비축해 뒀다면 어쩔 것인가. 


나는 무작정 결과만을 놓고 비교하기보다는, 그 기저에 놓인 배경과 과정, 의도를 더 아끼기에 오늘의 나를 용서해보고자 한다. 변명같이 들리겠지만, 내 변명을 내가 해주지 않으면 누가 해줄 것인가. 어찌 됐던 중요한 것은 나는 이 하루 최선을 다했고, 비교 대상을 순전히 나에게만 돌린다면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것임엔 틀림없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고, 위축되면 위축될수록 더 나은 내일을 살아갈 용기와 힘을 잃어갈 뿐일 테니. 나는 더 이상 기죽지 않고 오늘 하루 수고했노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련다.


평소라면 이런 용기가 없었을 텐데, 로메르의 영화가 나에게 어떤 용기와 위안을 주고 말았다. 고맙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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