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영 Nov 03. 2024

어떤 아픔은


어떤 아픔은 잊혀지지 않는다. 계절이 지나면 자라는 종기처럼, 열꽃처럼. 다 지나간 줄 알았지만 비수처럼 되돌아오고 마는.


무던하게 시작해 무던하게 마무리된 하루였다. 평소보다는 미어터진 지하철을 타고 주어진 일을 했으며, 살기 위해 죽은 것들을 먹었다. 시시콜콜한 대화, 어떤 것들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무미건조한 리액션들. 어쩌면 모두 생을 위한 것들이었다. 생을 위해 활을 해야 했다. 가만히 앉아있어서는 살아갈 수 없었다. 그렇기에 밤잠을 설치고 기꺼이 고단한 것이다. 어떤 목표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이 거대한 도시 위에서 살아남는 것뿐이었다.


넋을 놓고 살아가는 동안, 운 좋게도 시야와 정신이 번뜩이는 때가 있다. 바로 다른 세상을 마주할 때,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뭔가를 만날 때다. 오늘은 책을 읽었다. 역사적 비극 속에 스러져 간 이들을 다룬 책이었다. 무수한 활자가 천천히, 천천히 마음을 적셔주었다. 그것들이 만들어 간 작은 끈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잊고 지냈던 기억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픔이었다.


문득 차디찬 바다에 잠겨가던 이들을 기억한다. 생을 위해 투쟁하던 이들이 으스러져 가던 것을 기억한다. 존재 자체를 부정받은 채, 스스로를 깊숙이 숨길 수밖에 없던 이들을 기억한다. 그들은 소리 지르지 않는다. 단지 기억의 저편에서 단념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 시선의 무게에 질식될 것만 같았다. 다시 저 멀리 달아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의 끈을 뿌리치고 달리고, 한참을 달려가도 피할 수 없었다.


어떤 트라우마는 그 무게가 너무도 압도적이어서, 그것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게끔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아픔을 잊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살아야 했기에, 생을 위해 정신이 택한 활(活)인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끝내 아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달아날 수도 없음을.


꽃망울 맺히던 따뜻한 봄날을 떠올려 본다. 완연한 봄바람이 내 볼을 스치던 그날. 그러나 그 봄은 어느 때보다 폭력적이었으며, 큰 상처를 남긴 시간이었다. 그 상처가 너무 쓰라려, 나는 아픔을 봄날로 기억하려 했던 것이다.


책을 덮으며 서서히 오늘로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일상의 것들을 응시한다. 나에겐 아픔이 있다. 당신에게도 아픔이 있다. 온전히 내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그렇다고 내 것이 아니지도 않은. 분명 또 다른 아침이 밝아오면, 이 아픔은 망각의 세계 저편으로 떠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겐 흉터가 남아있다. 그리고 이 상흔은 아무 이유 없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부디 기억해 달라고, 또다시 누군가 아프게 될 일은 없게 해달라고, 가장 지독한 고통으로 하여금 잊지 말아 달라고.


아픔을 천천히 곱씹어보기로 한다. 서서 소화되도록, 이 몸과 마음속에 스며들도록. 그리하여 다시는 이 아픔이 어디선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나의 생과 활이 결국 그렇게 되기를 이끌도록. (1014)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 후, 홀로 제주로 떠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