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계엄단상

by 김민영 Dec 08. 2024


계엄이다.

12월의 눈이 내리던 밤이었다. 난데없는 뉴스 알림에 두 눈을 의심했다. 계엄이 선포됐다고 했다. 계엄, 영화에서나 보던 단어였다. 열심히 일을 하고, 지친 몸을 뉘인 이 밤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평범한 일상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아니, 2024년을 살아가는 오늘엔 있어서 안 되는 단어였다. 몸을 일으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뉴스를 보도하는 앵커들 조차 당황한 모습이었다.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생각지도 못한 계엄이었다.

카메라가 급히 앵글을 돌린다. 이윽고 경찰이, 군대가, 헬기가 국회로 몰려가기 시작한다. 모두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민의 권리를 위임받은 자들이, 주권자들이, 국회로 몰려가기 시작한다. 화면 속의 모습을 의심하며 멍하니 텔레비전 앞에 서 있었다.

군인들이 서서히 국회를 향해 가는 동안, 계엄 해지를 결의하기 위한 의원들의 움직임이 한시가 바쁘게 벌어졌다. 군홧발이 권리를 향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머리털이 바짝 섰다. 평범하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 지난한 하루를 보낸 뒤 마주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계엄을 선포한 권력자는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였다. 동의할 수 없었다. 나의 하루는, 우리의 하루는, 그렇게 무너져서는 안 됐다.    

 

아침이다.

새벽이 다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니 계엄이 종료되었다는 뉴스가 가득했다. 아침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지난한 밤을 지나 맞이한 아침이다. 간밤의 걱정,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지며 일상이 다시 찾아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집을 나선다. 커피를 사 마셨고, 출근을 위해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회사 동료들과 안부를 나누고 주어진 일도 했다. 그리고 무사히 다시 집에 돌아왔다. 당연한 일상, 그러나 어쩌면 달리 쓰였을지 몰랐을 하루였다. 그래서 감사했다. 무사히 아침이 밝았음이, 일상을 살 수 있었음이.   

   

다시 밤이다.

계엄이 끝난 뒤, 세상은 탄핵을 떠들고 있다. 다시 탄핵 정국이다. 반헌법적인 행위를 벌인 권력자를 더는 용서할 수 없다며, 당장 끌어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거리로, 광장으로, 주권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모든 일들이 급작스레 벌어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지리멸렬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전에 분노하였다.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졌음에, 비극의 재현을 막을 수 없었음에.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했지만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음에. 가치의 종말에. 다시 혼란스러운 세상을 맞이한다. 아침이 밝아온 줄 알았으나 해 짧은 계절의 밤은 금세 다시 찾아왔다. 이 겨울의 밤은 얼마나 지난할 것인가.      

늦은 밤, 광장으로 나섰다. 침묵하는 어둠 사이로 작은 외침이 들려온다.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외침의 울림이 점점 커져갔다. 빛이 보였다. 삼삼오오, 여린 손에 빛을 거머쥔 인파가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 불빛은 어두운 밤을 몰아낼 수 있을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밤은 길지 않을 것이다.

다시 아침이 밝아올 것이다.     

빛이 있는 곳에 아침은 반드시 밝아온다. (1208)

매거진의 이전글 의도와 결과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