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종합소득세)과 7월(부가세), 나는 남인천 세무서에서 신고 도우미로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알바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은 요즘, 세무서에서 신고 도우미로 일 해볼 생각 없냐는 같은 과 후배의 제안에 나는 바로 오케이를 외치고 부랴부랴 세금 신고 공부를 시작했다. 아직 학생의 신분인지라 세금의 세자에도 관심 없던 나였기에, 홈택스 영상과 유튜브 영상들을 열심히 찾아 공부해 봤지만 도통 무슨 소린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고 나서야 조금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신고 도우미로 일했던 남인천 세무서[네이버 지도 캡쳐]
나름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처음 들어선 세무서 신고 창구. 그때 마주한 모습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시작부터 쉴 틈도 없이 사람들이 밀려들었고 막상 실전에 투입되니 당황하고 버벅대기 일수였다. 5월 종합소득세 기간엔 하루 평균 1000여 명이, 어쩔 땐 1500명 넘게 세무서를 찾았으니 얼마나 정신없었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숨 고를 새도 없이 전쟁터 같은 하루하루 속에 처음엔 어쩔 줄 몰라하며 당황하던 나였지만, 어느덧 능숙하게 세금을 신고하는 기계가 되어있었다.
5월과 7월 신고기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았지만, (정말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신고 도우미를 하면서 정말 많은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이 세금 조금만 나오게 도와달라, 요즘 경기가 많이 어렵다 등의 말씀을 해주셨고, 다양한 개인사도 덩달아 얘기해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바로 ‘홈택스 너무 어려워요’라는 말이었다.
종합소득세와 부가세 신고를 하기 위해 세무서를 찾은 많은 분들은 홈택스 전자신고를 할 줄 몰라서 혹은 너무 어려워서 세무서를 찾았다고 말씀해 주셨다. 막상 신고하려고 홈택스에 들어갔는데, 시작부터 막히고 너무 복잡해서 몇 시간을 골머리를 앓았다는 분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사실 나 역시도 처음 홈택스를 마주했을 때 느꼈던 당황스러움과 복잡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복잡한 용어들과 절차들, 그중에서도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나?' 하는 두려움이 홈택스가 어렵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였다. 물론 매일 같이 반복되는 업무 속에 어느새 숙달된 나였지만, 어쩌다 한번 신고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굉장히 난처했으리라.
홈택스 홈페이지. 그리 간단하고 편리하기만 하진 않았다
많은 분들이 지적해주셨고 나 역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홈택스가 처음 혹은 한 번에 시도함에 있어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는 점이다. 단순히 홈택스 안내 영상을 보고 시도하기에는 이것저것 헤매느라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또 어려운 용어들과 뭐 하나 까딱 잘못 누르거나 입력하면 오류창이 뜨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는 등 난관이 많다는 의견들이 굉장히 많았다. 납세자의 입장에서, 세금 신고가 이처럼 복잡하고 어렵다면 신고에 대한 거부감과 실제 신고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확신이 들지 않아 세액에 대한 불신이 높아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실제 세무서에서는 신고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심하거나 계산된 세액에 불만을 토로하며 일부 민원인들이 직원들과 다투는 일이 꽤 있었다. 애초에 신고 방식이 명쾌하고, 간단히 이뤄질 수 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처음 시도하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고 바로 해낼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 가지 더 눈여겨볼 점은 홈택스가 어려워 세무서를 찾았다고 말했던 사람들 중 다수는 50·60대 이상의 장·노년층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홈택스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말하거나, 혹은 아예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계셨다. 물론 홈택스를 어려워하는 젊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컴퓨터를 못해 아예 시도조차 못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반대로 컴퓨터가 익숙지 않은 어르신들에게는 ‘간편한 홈택스’를 이용한 세금 신고가 전혀 간편하지도 않은, 커다란 장애물과 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수 십 년 전에는 그저 수기로 신고가 가능했던 것이 이제는 주로 인터넷으로 신고가 이뤄지다 보니 아직 컴퓨터나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장·노년층들은 나와 같은 도우미의 도움 없이는 매끄러운 신고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홈택스 서비스 도입을 하면서, 그들에 대한 배려도 함께 고민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공 서비스 분야에도 빠르고 편리한 정보화 구축이 필요하고 또 중요했겠지만, 여전히 그것을 어려워하고 불편해하는 국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들을 배려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세무서를 찾은 고령의 노인분들은 전자 세금 신고가 어려워 불편한 몸을 이끌고 멀리서 찾아오는 분들이 허다했다. 이런 분들을 위해 큰 세액이 아닌 경우 신고할 필요 없이 바로 납부가 가능하게끔 집으로 고지서를 발송해 주거나, 세무서뿐 아니라 동네 주민센터 등과 같은 관공서에도 세금 신고 도움 서비스를 운용해 멀리 세무서까지 찾아올 필요 없이 최대한 편리하게 세금 신고가 가능하도록 하는 시도들이 같이 이루어진다면 그들이 조금은 불편을 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세청은 홈택스 사용률이 95%가 넘는다며 이를 홈택스 홈페이지에 자랑스레 홍보했다. 그러나 세무서 창구에 앉아 마주한 현실은 너무나도 딴판이었다. 신고기간 내내 매일 수천 명의 시민들이 홈택스가 어려워 세무서를 찾았고, 대신 신고를 도와줬던 나를 비롯한 전국의 많은 도우미들이 대신 홈택스를 이용했으니 95%가 넘는 수치가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겠지만 이는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홈택스가 잘만 한다면 세무서까지 갈 필요 없이 편리하고 좋은 시스템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어렵고 복잡하다며 불편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국세청은 이런 현실과 괴리된 수치를 보며 자화자찬하기 이전에 다양한 납세자들의 의견을 청취해 보다 편리한 홈택스 서비스 마련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