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3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처음의 향, 왜 달라졌을까

by 김민영 Mar 17.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매일 아침 나에게는 작은 루틴이 있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은 뒤, 향수를 꺼내 손목과 목덜미에 뿌리는 일이다. 때로는 독한 향을, 때로는 은은한 향을 뿌리고 출근길에 나선다. 향수를 뿌리는 까닭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단지 나에게서 좋은 향이 났으면 하기 때문이다.


향수처럼 은은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은 어렸을 적부터 꿈꾸던 일이다. 물론 아직 한참 젊은 나이지만, 근사한 향이 나는 번듯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 여유가 없을 적엔 그저 먼 꿈과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일을 시작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며 이따금 작은 향수를 사모으기 시작했다.


향이 가장 좋을 때는 처음 그 향을 맡았을 때다. 낯선 향이 코 끝을 찌르는 순간, 새로운 자극에 매혹당하게 된다. 여름의 상큼한 과일이, 도시의 절제된 세련함이, 묵직하고 은은한 겨울이, 책장에 베인 차분함이 향이 되어 다가온다. 상상치도 못한 감각이 향을 통해 다가오는 순간, 설렘을 넘어 어떤 충동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갖게 된 향이 어느덧 수어개를 넘어섰다. 그러나 하루 이틀, 그 향에 서서히 익숙해지면 어느덧 그 향은 꽤나 따분한 것이 되고 만다. 여전히 좋은 내음이 나지만서도, 어딘가 못내 아쉬워 새로운 향을 탐하게 된다. 여러 개의 향수를 가지고 있어 돌려 막기가 가능하지만, 처음엔 견디기 힘든 권태로움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비단 향수만의 문제겠는가. 새로운 도전을, 인연을, 순간을, 풍경을 맞닥뜨렸을 땐 한없이 감동적이던 것들이 일상이 되는 순간 뻔하고 당연스러워지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영원히 반복될 것만 같은 따분함, 그리고 막연한 두려움이 더는 견디기 힘들 게 만든다.


왜 향은 처음 같을 수 없을까. 왜 모든 것은 당연해지고 따분해지는 것일까. 처음의 그 강렬했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할 수는 없을까. 그래서 찰나의 순간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일까도 싶다.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 이 청춘이 곧 사그라들듯이, 당연한 인연에도 끝이 있듯이, 생에게 멸이 찾아오듯이.


못내 아쉬운 이 향을, 하루를 온전히 음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루의 순간들을 천천히 곱씹어야지. 무수한 감각들을 기꺼이 아로새겨야지. 향이 소멸하는 그 순간까지 몸부림쳐야지. 그렇게 나 역시도 은은한 향을 내는 사람이 되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요령과 하는 척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