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9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혐오를 마주하던 날

by 김민영 Mar 24.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간만에 이태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평소엔 먹고 싶지도 않던 부대찌개가 먹고 싶어서였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쉽사리 맛집을 찾기 어려웠다. 부대찌개를 먹기 위해선 역시 부대 근처로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기꺼이 용산으로 향하는 6호선 전철에 몸을 실었다.


녹사평에서 이태원 사이 즈음이었다. 조용하던 열차의 적막을 깨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캐리어를 들고 서 있던 두 외국인 여성들에게, 어떤 아주머니가 난데없이 혐오 발언을 쏟아내고 있었다. 무슨 자격으로 이 나라에 왔냐며, 당신네 나라가 얼마나 나쁜 짓을 하는지 아냐며, 당장 돌아가라는 내용의 말이었다. 두 귀를 의심했다. 내가 지금 무얼 듣고 있는 것인가.


혐오를 마주한 순간, 여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웃고만 있었다. 나 역시 시선을 그곳에 두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두 손이 벌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혐오의 현장을 한참 째려보다 이태원역에서 무기력하게 내려야 했다.


아주머니는 왜 생면부지의 두 여인에게 그런 얘기를 꺼내야 했을까. 어느 주말의 적막을 깨운 혐오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플랫폼을 넘어 개찰구를 빠져나오는 동안 한참을 곱씹어 보았다. 처음엔 그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혐오의 감정이 평온했던 일상을 덮쳐버린 것만 같았다. 그러나 웃을 수밖에 없었던 두 여인의 모습이 떠오르자, 감정은 어떤 다짐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다른 것을 미워할 수 있다는 믿음. 기꺼이 그 믿음을 말과 행동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마음. 평범한 주말 오후의 혐오는 그렇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것을 미워할 수 있다는 믿음은 어디서 오는가. 다른 것을 미워할 권리라는 것은 과연 있을 수 있는가. 한참을 생각해 봐도 그럴 수 없었다. 필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서로를 미워한다면 어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다행인 것은, 전철을 타고 있던 사람들의 눈빛이었다. 모두 적의에 가득 찬 시선으로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다른 것과 옳지 않은 것을 우리는 구별할 수 있었다.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만 그렇지 못했을 뿐이다.


혐오의 감정이 번지지 않도록 하는 것. 옳지 않음을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것. 혐오를 마주한 뒤 다짐하였다. 오늘은 막을 수 없었으나 끝내 막아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처음의 향, 왜 달라졌을까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