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출근길 전철은 느리게 움직인다. 신도림, 신림, 사당에서 물밀듯 탑승하는 사람들을 체하며 꾸역꾸역 담아내기 때문이다. 스크린도어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동안 여인의 미간은 잔뜩 구겨졌다. 나는 함께 미간을 찌푸리는 대신 두 눈을 질끈 감는 편을 택했다. 아무것도 보지 않을 때 가장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지각을 할 뻔했다. 늦지 않기 위해, 아니 늦지 않으려 했음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 그런 척을 하기 위해 잠시 뛰었다. 덕분에 2분을 남겨두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숨을 고르는 동안 드디어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단한 월요일이었지만 다행히 업무가 많지 않았다. 그럴 때는 뭔가 하는 척을 해야 했다. 듀얼 모니터를 각종 브라우저와 폴더로 가득 채웠고, 화면 분할까지 해가며 빈틈을 남겨두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공간에 내 시선을 - 딴짓 거리를 - 쏘아대며 시간을 버틸 궁리만 하였다.
동료는 나를 처음 봤을 때 서른이 줄 넘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 회사에서의 꼴은 이렇지만 모자 쓰고 다니면 민증검사를 한다는 말을 하려다가 끝내 삼킨다. 말이 많아지면 궁색한 꼴이 되는 것이 싫었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그들에게 그런 사람일 테니까. 대신 바삐 하는 척을 이어갔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당장 급하지 않은 일들을 화면에 잔뜩 띄워놨다.
마음이 쉽게 불편해지는 편이라, 조금이라도 귀찮아질 만한 말에는 요리조리 피해 가는 요령이 늘었다. 괜한 말꼬리를 잡으며 화제를 돌리고, 갑자기 다른 게 생각난 척하고, 그런 말들로 시선을 피한다. 그리고 끝내 도망간다. 집으로 향하는 2호선 전철에 올라타서야 결국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잘 살아보려 했는데, 그저 하는 시늉만 늘었다.
오늘은 잘 피했지만 내일은 어찌하려고.
잘 살고 싶었는데, 하는 척만 한다.
내일은 또 무슨 변명을 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