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클라베>를 본 뒤
얼마 전 극장에서 영화 <콘클라베>를 감상하였다. 영화는 교황의 죽음 이후,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 투표 과정을 박진감있게 다룬다. 지루하고 따분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숨겨진 비밀과 갈등들이 드러나며 긴장감과 몰입감을 높인다.
인물들의 구도와 갈등만큼이나 인상깊었던 것은 바로 영화 속 대사였다. 특히 추기경들의 단장을 맡은 로렌스가, 콘클라베의 서두에서 남긴 말이 가장 압권이었다. ‘확신은 가장 큰 죄다.’
달관의 나이에, 교회 권력의 최고점에 서있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어떤 경지에 다다른 사람이라면 응당 자기 확신에 빠지기 마련이라고 생각했었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깨닫고, 설령 그것이 진리가 아니더라도 그렇다고 믿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저 말은 나의 환상과 착각을 완전히 조각내 버렸다.
나는 확신이 부족한 사람이다. 나는 늘 불확실함 속에 머물러 있었다. 진로를 쉽사리 결정하지도 못했고, 감정을 표현하는데도 늘 망설였다. 사람들 앞에서 단언하는 것에도 겁을 냈다. 이런 우유부단한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는 그것이 오히려 정직한 태도일 수 있음을 일깨운다.
자기 확신이야말로 자기 기만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되짚어보게 된다. 스스로를 잘 안다는 말도, 일각의 표면을 보며 타인과 세상을 쉽게 판단하는 것도, 모두 개인의 편리를 위한 단편적 의사 활동에 그치지 않는가. 재단된 기억과 자기합리로 섣불리 확신에 이르게 되는 경우를 나 스스로도 수없이 목도해왔다.
나도, 당신도, 세상도 복잡하기 그지 없다. 모두 실수를 저지르고, 변덕을 부리며, 거대한 존재 앞에 한없이 작을 뿐이다. 우리는 결코 완전할 수 없다. 그런 우리가 확신을 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의심과 불안은 불완전함의 증거가 아니라, 세상을 올바르게 인식하려는 태도에 해당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오늘의 모순을 끝없이 의심하고, 끝내 극복해 나가야 한다. 성급한 판단과 타자화, 이분법적인 사고는 결국 세상을 분열시키고 말 것이다.
항상 의심할 것, 잘못을 하고, 기꺼이 용서를 구할 것,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될 것. 영화가 내게 남긴 교훈이다. 나는 더 이상 확신을 갈망하지 않을 것이다. 어설픈 통찰이나 경험에 기대어 타인을 재단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끝없이 의심하고 다시 질문하는 일 뿐이다. 그것이 진실에 닿기 위한 유일한 길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