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붙들려 휘둘릴 때는, 멀리 달아나야 한다. 멀어져야만 한다.
고객사에 전달할 리포트를 쓰느라 요 며칠 고생 중이다. 경쟁사 대비 그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를 분석해 정리해야 한다. 수천, 수만 건의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답이 나올 것 같지만, 끝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결국엔 희미한 숫자로, 애매한 문자로, 끝내는 알 수 없는 말들로 멀어져 갈 뿐이다.
조직에서 일한다는 것은 목표와의 싸움이자, 사람과의 싸움 속에서 견뎌내야 함을 뜻했다. 일이 되게 만들기 위해선 고객과 팀원 모두를 만족시켜야 했다. 소통과 소통 속에서 말은 말을 낳고, 쓸데없는 오해를 낳고, 갈등을 낳는다. 지적과 지적 사이에서 누군가는 지쳐가고, 의욕을 꺾는 말 앞에서는 도무지 버텨낼 방도가 없을 때도 있다.
길어진 회의 끝에 누군가 날카로운 말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끝내 누군가 상처를 입고 말았다. 누구나 위태로워지는 순간은 다르게 찾아오기 마련이니, 오늘은 특히 그에게 그런 날이었나 보다. 유난히 마음 깊이 와닿고, 아프게 박히는 말들. 덩달아 나도 요동치기 시작한다.
말이 아프게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말의 꼬리를 끝까지 따라가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봐야 할까. 그러나 그 끝에 놓인 마음은 너무 날카로울지도 모른다. 혹은 너무 독해, 숨 막게 만들지도 모른다.
도망치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때로는 달아날 필요가 있다. 사무실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말들로부터, 괴롭게 하던 것들로부터. 무작정 역으로 달려가, 지하철에 몸을 싣고 집 앞 공원으로 향한다. 멀리, 아주 멀리 달아나고 나서야, 비로소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름드리 드리운 나무와 여린 꽃들. 그 사이를 걷자 그제야 숨이 트이는 것을 느낀다.
멀어진 곳엔 다른 것들이 있다. 때로는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 살게 하는 것들. 독하고 위험하지 않은. 파란 하늘이 그렇고, 다정하게 걷는 사람들이 그렇고, 실없는 웃음들이 그렇다. 다시 호흡을 고른다. 모두 살기에 겪는 것들이다. 살기에 버겁고 살기에 아름다운 것들이다.
모두 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