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전날의 여운을 새벽까지 놓지 못한 탓에, 정오 가까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오늘 만은 게을러도 좋았지만 마냥 게으르면 스스로 눈치를 보게 되었다. 개운하지 않은 몸을 이끌고 살기 위해 밥을 먹었고, 잠시간 게임을 하다 집을 나섰다.
모처럼 부모님과 마트를 향한다. 오랜 시간 번화가를 지켜오던 마트의 폐점 소식을 접한 뒤로 마음이 심란하던 차, 자주 가지는 않지만 상품권을 쓰기 위해 조금 먼 곳에 위치한 다른 마트를 찾았다. 한때는 주말과 여가생활의 상징과도 같던 이곳도 더 이상 사람들로 붐비지 않는다. 새삼 세상이 변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들이 젊던 시절, 무수히 많은 추억이 남겨진 장소가 서서히 사라져 간다는 사실에 아쉬운 마음이 들다가도 나 역시도 앞으로 무엇을 잃게 될지 막연해졌다.
의기양양하게 얻어 온 상품권을 쓰려던 아버지의 계획은, 마트가 아닌 백화점에서 교환해야만 한다는 직원의 말 한마디에 물거품이 되었다. 오래간만에 큰맘 먹고 비싼 물건들을 사려던 우리의 포부도 금방 꺾여, 의욕 넘치던 쇼핑은 갑작스럽게 마무리되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그럼에도 함께 또 다른 추억을 새길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세상은 변하고, 익숙한 것은 늙어간다. 당연한 것은 없다. 몇 번의 주말과 몇 번의 추억을 새긴 뒤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게 될 것인가. 문득 마음이 헛헛한 듯한 당신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서글픈 마음이 들다가도 모두 같은 길을 걸어갈 팔자라는 생각을 하니 그저 당신들이 그 앞길을 잘 걸어가 주기를 소망한다.
당신들이 걸어갈 길, 내가 뒤따라 갈 길. 모두 한 때는 젊었고 늙어갈 운명. 막연한 세상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애쓰다 결국 사라질 존재들. 그럼에도 우리가 소중한 까닭은, 존재의 서사에 있다. 우리는 어떻게 만나, 서로의 삶에 새겨질 수 있는가. 이제는 청춘이 된 내가 당신들의 청춘을 바라본다. 서로가 서로의 시간을 기억할 수 있음에, 많은 것이 사라지고 잊혀가는 세상 속에서 서로는 서로를 기억할 수 있음에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
평범한 여름의 주말을 가슴속에 새긴다.
오늘은 영원히 더울 것이고,
영원히 다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