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숲이 우거진 도심 자락, 좁다란 언덕길을 숨 가쁘게 올라간다. 조용히 짐을 나르는 개미 한 마리를 밟을세라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 숲길의 끝에 다다르기 위해 서두르는 나.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땀 흘리는 동안 이 길에 놓인 것 중 얼마나 제대로 보고 지나쳤을까.
지난 밤, 뜻밖에 만난 누군가와의 대화를 돌이켜본다. 익숙하던 공간과 관련된 일을 했다는 말에 문득 반가움이 일었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알고 있다는 우연은 그 사람을 더 가까이 느끼게 했다. 하지만 몇 마디 말이 더해질수록, 그 사람은 닿을 듯 닿지 않는 모호함 속으로 멀어지고 말았다. 어떤 말은 나를 끌어당기고, 어떤 말은 어긋나 있었다. 알 수 있을 듯하면서도 끝내 다 알 수 없는 존재. 그럼에도 오래 알고 싶었다.
대낮의 절에는 연등이 길게 줄지어 매달려 있다. 그 아래에는 기다란 그림자가 드리운다. 나는 연등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림자로 시선을 옮긴다. 내가 보는 것이 연등인지, 그림자가 연등인지, 연등이 그림자의 그림자인지는 알지 못한 채.
문득, 인류가 오랜 시간 달의 뒷면을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수 천 년이 지난 뒤에야 인류는 겨우 달의 뒷면에 다다를 수 있었으나, 여전히 달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미궁 속에 있었다. 바라봄으로써 다 이해할 수 있었다면, 인류는 그토록 달의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녀야만 했을까.
본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만든다. 찰나 만난 당신도, 오래 알고 지내온 당신도 모두 마찬가지다. 모든 관계에겐 시야의 사각지대가 있다. 나는 당신을 알지만서도 알지 못한다. 오늘 만난 당신이 내일은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다. 나는 당신과 나눈 찰나의 단편을 모아 멋대로 추측하고 해석할 뿐이다.
때로 당신들이 너무 그리울 때면, 당신들과의 순간을 간절히 원할 때가 있었다. 더 잘 알고 싶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 함께 대화를 나누면, 함께 분위기를 공유한다면, 같은 시간을 추억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잘 알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서로를 떠날 운명이다. 다정했던 사람도, 어쩌다 만난 사람도, 긴 시간 곁에 있으면서도 말 한마디 나누지 않던 사람도. 우리는 어쩌다 만나, 이별하고, 또다시 만나고, 결국 이별하고, 영영 떠나갈 것이다. 무한한 이별의 굴레 속에서 나는 당신을 얼마나 볼 수 있을까. 다 알 수 없음이, 다 알려줄 수 없음이, 그리고 그렇게 서로를 속인 채 살아가야 함이, 무척이나 야속하였다.
나는 당신들의 궤도를 떠돌고 있다.
진득이 볼 수도 없이
관성에 이끌려
이리저리 흐르며
끝내 다가올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