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는 조심스레 플랫폼을 떠났다. 이 한적한 고장에서 서울로 향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듬성듬성 앉은 사람들 사이로 예매해 둔 좌석을 찾아 조용히 앉는다. 이윽고 창밖 너머로 드넓은 하구가 펼쳐진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갯벌이 드러나 있던 곳인데, 밀물이 들어차니 제법 웅장한 자태다.
문득, 이 낯선 곳을 찾은 까닭은 단순했다. 그저 환기가 필요했을 뿐이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다만 지난한 일과의 무게에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지쳐가고 있었던 것 같다. 끝없는 회의와 성과 분석, 장표 제작 따위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집중은 흐트러지고, 마음은 점점 마모돼 갔다.
강을 건너 도가 바뀌자 창밖 풍경도 달라진다. 곧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재생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잠시, 짧은 여행에 쌓인 피로 때문인지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든다. 몇 개의 역을 지나도록 곤히 잠들어 있다가, 서울이 서서히 가까워질 무렵에야 눈을 뜬다. 어느새 열차 안은 북적이기 시작했다. 각자의 주말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다시금 소리를 덮으려 이어폰을 들었다.
그때, 이어폰 없이 여행을 했다는 동료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잊고 지냈던 소리들이 더없이 좋았다고 했던 그 말. 그 말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이어폰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사람들의 소리가 선명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이의 울음소리, 아이를 달래는 엄마의 다정한 말소리. 웃음을 터뜨리는 젊은 친구들, 가족과 안부를 나누는 할머니의 전화 소리, 그리고 그들을 싣고 다니는 기차의 덜커덩 소리.
듣지 않아야 들을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한때는 소음으로, 잡음 따위로 여겼던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듣지 않으려 애써 귀를 막고 온갖 노래들로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럴수록 나는 세상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나의 생각과 마음은 공명하지 못했다. 그리고 점점 저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우리는 종종,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하루하루가 버겁다고, 삶이 고되다고 푸념하면서도 그 고단함이 오직 나만의 것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세상은 늘 곁에 있었고, 함께 살아가는 당신들이 있었다. 그 소리들을 비로소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내가 잡음이라 여겼던 것들은 당신들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안에 갇혀 울리던, 혼자만의 외침이었다.
한참을 당신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동안, 열차는 서울로 접어든다.
당신들의 삶을 싣고, 함께라는 믿음을 실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