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노래를 들으며 서울 근교의 신도시로 향한다. 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즈음, 허허벌판이었을 이곳엔 이제 수많은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서있다. 노래도, 아파트도, 모두 그 시대의 필요로 만들어졌을 것들.
언젠가 친구가 들려준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문득 머릿속에 맴돌았다. 모든 인연엔 때가 있다는 말. 어리숙한 그때, 무너졌던 지난날, 서서히 익어가던 지금까지, 매 순간마다 내 옆을 지켜주던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떤 인연은 기한을 다하기도 한다. <중경삼림> 속 금성무는 지난 인연을 잊지 못하고 5월 1일이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까먹곤 했지만, 대부분의 인연은 그렇게, 유통기한을 지나듯 사라져 갔다. 그렇게 인연들은 기억 저편 속에 잠들어있다, 가끔 불쑥 나타나 눈물짓게 만들곤 했다.
한때는 날 살게 했던 노래들, 풍경들, 당신들을 돌이켜본다. 문득 당신들이 저 멀리 사라진 것만 같아 마음이 먹먹해진다. 그러면 낮은 화소로 찍은 지나간 시절의 사진을 보며 생경해진 당신들을 되짚어 본다. 그제야 비로소 당신들은 어떤 형체로 나를 향해 걸어온다.
우리는 왜 그렇게 떠나야 했을까. 이토록 마음 아파할 줄 알면서도. 어쩌면 홀로 선다는 것은, 누군가의 품을 떠나야 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러니 그 모든 이별은, 우리의 독립을 위한 필연이었을 것이다.
저 멀리 창문 너머로 매미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긴 시간 땅속에서 견디고 나와, 비로소 어른이 된 매미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여름을 가득 채운 그 울음이, 실은 혼자인 것이 두려워 터뜨린 절규임을 알게 된 그날부터 나는 마음이 애처로웠던 것 같다.
버스는 강변도로를 따라 신도시로 접어든다. 신도시라는 말이 문득 생경하게 느껴진다. 지금은 새롭지만, 이곳도 영원히 새롭지 않을 것이다. 도시의 목적과 운명이 다할 때 이곳은 또 다른 시대의 유물로 추억될 것이다.
그때의 나 역시도 더 이상 젊지 않을 것이다. 충분히 늙어, 흘러간 오늘의 노래를 듣고 있겠지. 그렇게 무수히 많은 기억 속에서 잊혀지겠지. 모든 일엔 시작과 끝이 있다는 당연한 진리가 서글프게 만든다.
그러나 오랜 뒤,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 누군가가 있다면. 찰나더라도, 누군가의 시간 속에 새겨있기를 바란다. 그 시절에 나의 역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소중한 순간을 지켜준 모든 것들에게, 당연했던 누군가에게, 이제는 저 멀리 떠나버린 인연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보낸다.
당신들로부터 내가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