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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영 Feb 07. 2020

'동맹국' 미국의 거센 압박을 바라보며

  미국이 지지부진한 방위비 분담금 협상 과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의 무급 휴직 카드를 들고 나왔다. 지금과 같이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오는 4월부터 부대 내 한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부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지속해 왔으나, 몇 차례에 걸친 협상과정에서도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양측의 큰 견해차만 확인한 상황이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월엔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이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문을 게재하며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강력히 요구한 바 있다. 또한 이란군 사령관 솔레이마니 암살 사건으로 촉발된 미국-이란 간 갈등 상황에서 미국은 한국에 호르무즈 해협 파병 참여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미국의 동맹국이면서도, 이란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던 우리에겐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미국의 요청에도 간접적으로 부합하고, 이란과의 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독자 파병이라는 절충안을 내놓았지만 이란의 반발을 피할 수는 없었다.

          

트럼프, 그리고 미국인들의 불만


  한국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은 후보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후보 시절부터 그는 한국과의 무역에서 심각한 불균형이 존재한다면서 불만을 토로했었고,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한미 FTA에 대해서는 '재앙'이라고 표현하면서 결국 재협상을 이끌어낸 바 있다. 또한 부유한 동맹국들이 미국이 그들을 보호해주는데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하며 그 대표적인 예시로 한국을 끊임없이 언급해오는 등, 한국과 미국의 동맹관계에 있어 불공평한 면이 있음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는 동안 동맹국과의 무역에서는 심각한 적자를 보고, 중국 등의 신흥국으로 제조업의 중심이 이동하는 상황에서 수많은 미국의 노동자들과 서민들은 일자리를 잃어갔다. 그런 와중에 나타나 대가를 치르지 않는 동맹국들을 거칠게 비판하고, 더 이상 다른 나라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자국의 산업과 경제 부흥에 힘쓰겠다 말한 트럼프는 그간 불만이 내재되어있던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트럼프의 견해를 우리나라 언론들과 그들이 자주 인용하는 주요 외신(CNN, 뉴욕타임스 등)들이 대체로 부정적으로 다루기도 했고, 나 역시 처음에는 그것을 트럼프의 왜곡된 개인적 견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 카투사 복무 시절 만났던 내 미군 상관이 '한국은 잘 사는 나라면서도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데, 그리고 부대를 건설하는데 비용을 거의 내지 않는다'라는 불만 섞인 주장을 한 적이 있고, 이따금씩 트럼프의 정책에 크게 공감하고 지지한다는 다른 미군들의 말을 들으며 크게 놀란 기억이 있다. 물론 미군들의 공화당과 트럼프 정권 지지도가 높다는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어찌 됐건 그것이 결코 어떤 특정인 만의 의견이 아닌, 적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받고 지지받는 의견임을 알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트럼프의 행보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서, 그리고 트럼프를 향한 지지가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그를 지지하는 미국인들의 불만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인으로서, 트럼프가 말하는 것처럼 정말 이 동맹관계는 우리만 이득을 보는 불평등한 관계일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국정연설 중인 트럼프. (사진=AP통신)


  물론 미국이라는 나라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구해준 나라라는 인식과 양국이 공유하고 있는 기본적 가치 그리고 수 십 년의 시간 동안 매우 활발하게 벌어진 교류 등을 고려했을 때, 미국은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동맹국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난 수십 년간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해야 했고,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는 군사적 위협과 핵개발을 저지해야 했던 우리에게 미군의 존재는 국가의 안정적인 유지·발전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었으며 이로 인해 그동안 미국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몇 차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맹에 대한 국민적, 국가적 신뢰는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 또한 대륙 바로 앞에 위치한 동맹 한국 덕분에 냉전시대엔 소련, 현대에 와서는 중국 등 강력한 대륙세력의 태평양으로의 진출을 바로 앞에서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는 이점을 누릴 수 있었으며 더욱이 태평양 지역 동맹국들의 풍요로운 경제적 발전과 민주사회로의 성공적인 정치 체제 전환은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데 이바지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주한미군의 존재 역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억제하는 것뿐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미국이 수 만 명이 되는 주한미군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존재가 단순히 동맹국의 안보에 기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동맹을 통한 이득은 어느 한 나라만이 압도적으로 취해온 것이 아닌 상호 호혜적인 것이었으며 이러한 동맹관계를 계산적으로 보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오던 동맹 관계에 균열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이 주한미군을 통해 수 십 년간 대한민국 안보에 기여해 오면서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온 것은 사실이며, 주민들과 크고 작은 갈등을 겪었음에도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노력해온 주한미군의 존재는 우리에게는 굉장히 고마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도움을 그저 넋 놓고 앉아 받아먹기만 한 것이 아니다. 한국은 1991년 이후 지금까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방위비를 합의·분담해왔고 분담금 말고도 부대 운영에 기여하는 여러 간접적 지원을 부담해왔으며, 거대한 미군 기지(평택 캠프 험프리스)를 건설하는데도 10조 원이 넘는 막대한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더욱이 주둔 비용 외에도 막대한 미국산 무기 구입 비용 더 나아가 미국이 대한민국 전반에 끼치고 있는 유무형의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임의적인 계산을 통해 갑작스레 막대한 분담 비용을 요구하는 그들의 요구가 정당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미국이 내세운 부대 내 한국인 근무자의 무급휴직 카드 역시 살펴보아야 한다. 식당, 매장, 편의시설, 차량 및 물품 지원 업무 등 부대 내 주요 시설 직원 대부분은 한국인이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주한미군 부대 운영의 핵심적이고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으며, 이들의 고용 불안을 초래하는 것은 결국 부대의 정상적인 운영과 병사들의 생활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협상 압박용 카드로써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만일 실제 무급휴직을 실시했을 때 주한미군이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자국군 부대의 운영을 파행으로 몰고 가면서까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켜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가 없다.  


  오늘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의 군사적 대치 상황, 그리고 점점 강도와 빈도가 커져가는 미국과 중국 간의 충돌 상황 속에서 한국과 미국 양 측 모두에게 있어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여전히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중대한 상황 속에서 이런저런 명분을 붙여 갑작스레 분담 비용을 늘리고 그동안의 동맹 관계가 불평등했으니 평등하게 만들어 보겠다는 트럼프 정권의 행보가 진정 양국의 이익을 위해 멀리 내다본 결정인지 아니면 그저 지지층의 결집을 노리고 대통령 개인적 견해에 바탕을 둔 성급한 결정인지 안타깝고 우려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영원한 동맹은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미국의 압박을 순전히 트럼프 정권에서만 벌어질 일로 국한 지어 바라보는 것이 맞을까? 믈론 트럼프 정권이 이전 정권들과 다르게 동맹국들과의 관계에 있어 계산적인 접근법으로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유례가 없다고 할 만큼의 요구와 압박이 계속되고 있고 향후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다면 이러한 상황도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이 보여주는 동맹국들을 향한 압박은 많은 것들을 시사해준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중국의 패권 도전이 점점 가속화되고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지난 몇 년 간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던 미-중 무역 분쟁, 그 이전에도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미와 중국 간의 마찰 등 두 세력의 충돌은 본격화되고 있다. 그런데 두 세력의 사이에 위치한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상, 점차 치열해지는 이러한 패권 경쟁 속에서 미국과 중국이 우리에게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는 어려운 요구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다시 말해서, 미국이 동맹국인 우리를 압박하는 상황은 (지금의 상황과 근본적인 배경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비단 트럼프 대통령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앞으로 우리가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미국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동맹이자 주요 가치를 공유하는 핵심 파트너라는 사실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점점 팽창하는 중국이 지역 내 패권과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내정간섭 수준의 막대한 주권침해와 한한령과 같은 한국 때리기를 일삼아 왔던 것 그리고 근본적인 사회 체제와 가치 등에 있어 한중간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돌아봤을 때, 우리에게 중국의 존재는 미국과 같은 수준의 동맹국이라기보다는 협력하면서도 견제해야 할 대상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한미동맹이 의미하는 바는 앞으로도 여전히 클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미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한미 동맹관계에 지나친 환상을 가지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우리의 동맹이기 이전에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은 사실 당연한 것이며, 우리를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거센 압박은 이를 보여주는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한미 동맹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할 차례이다. 그들은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우리를 지켜주고 도와주기만 하는 고마운 나라가 아니다. 그들 역시 동맹의 관계에 있어 철저히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나라이며, 먼 훗날 세계정세의 변화에 따라 이 동맹도 그 가치와 의미를 상실할 수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미국의 무리한 요구가 야속하지만, 지금과 같은 미국과의 외교적 갈등이나 이해충돌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관점에서 외교적 전략의 다양화를 추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향후 언제든 재현될 수 있는 압박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대책 수립 역시 절실하다. 만일 지금과 같이 미국이 자신들의 동맹국을 향해 압박하는 경우가 반복될 경우, 같은 이해관계 속에 놓인 다른 국가들과 연대하여 목소리를 내거나 또한 그들의 요구에 도리어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은 얻어 내는 외교 전략을 구사하면서 슬기롭게 그러한 상황을 풀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지속적으로 우호적인 동맹관계를 유지하며 최대한 갈등을 피하는 것이겠지만, 만에 하나 그럴 수 없다면 대비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늘 우리 곁에서, 온전히 우리 을 들어주는 친구 같은 나라는 이 세상에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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