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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검열

by 김민영


나를 내세운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면서도 때로 두려운 일이었다. 나만 알고 있는 어떤 구린 모습이 실오라기 하나 없이 발가벗겨진 것만 같을 때면 달아나는 상상을 한다. 두 볼이 시뻘게진 채로.


스스로가 별로라고 생각한 것은 꽤나 오래전부터의 일이었다. 선천적으로 어설픈 재능을 타고난 탓에 이곳저곳에서 삐그덕거렸고 특히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저런 일을 겪고 난 뒤엔 스스로를 감추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설프고 부끄러운 나를 솔직하게 꺼내 보였다가 상처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나는 세상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다. 그러나 존재 그 자체로 조롱받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게 나를 정당화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과장되거나 부풀려진 말들 따위로 나를 감추지는 않았다. 그것은 타고난 성향과는 거리가 멀었으므로. 대신 나는 부끄러운 삶의 한 부분들을 날카롭게 도려내어 흔적을 지워나갔다. 원래 모두 없었던 것처럼. 말 한마디도, 어떤 생각도, 외피의 형태도, 나의 어떤 부분들이 드러나지 않도록 교정하고 또 수정해 나갔다.


세상의 수많은 검열들. 1936년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가 그랬고, 1980년대 민주화의 흔적이 그랬고, 수많은 기록과 정신들이 누군가에 의해 사라져 갔다. 그러나 그것은 부끄러운 것들이 떳떳한 것들을 지워간 역사. 그것에 비한다면 내가 나를 위해 지운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적어도 나는 나에게만큼은 가장 떳떳하고 솔직해야 했으므로.


그러나 여전히 나는 나의 수많은 것을 도려낸다. 그리고 파편으로 만든다. 그 누구도 온전히 그것을 볼 수 없도록 꼭 봐서는 안될 것인 것만치, 그리고 저 깊숙한 골짜기 속으로 집어던진다


나는 나를 너무도 사랑해서 지웠어요, 그럼 나는 어디에서 솔직할 수 있는가. 어디에서 나는 나일 수 있는가 돌고 도는 질문 속에서 나는 답을 내리지 못한다.


그래서 이제는 써내려 간다. 이 투박한 단어와 문장들을.

사랑하는 것들을 지우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기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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