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동네 어귀의 냇가를 걸어갈 때가 있다. 영원할 것 같던 여름도 차게 식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한참을 지쳐 냇가로 향하고 있었다. 기분 좋을 때는 신이 나서 실없는 소리도, 웃기는 말도 떠들었지만 이날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깊은 침묵 속에 한참을 잠겨있다, 누군가 용기 내어 그 적막을 깨운다.
적막을 깨고 나온 말은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였다.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 앞으로 바라는 것들을 하나 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오늘이 몹시 지쳤기에 내일을 논해야 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듣고, 말하고, 듣고, 말하기를 이어갔다.
요약하자면, 성취 지향적이었던 당신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믿었다. 당신이 처한 상황 속 당면한 문제를 바라보고, 어떻게 하면 문제 상황을 해소하고 발전할 수 있을지를 궁리했다. 그러나 성찰 지향적이었던 나는 모든 문제는 허황된 것이라 믿었다. 문제란 것은, 자연 상태를 인간이 임의로 ‘문제 상황’으로 규정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객관적 상태의 문제란 것은 없으며, 불안하고 유약한 인간의 여정을 고스란히 남기고 성찰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당신의 말은 명료하고 간결했다. 차디찬 저 냇가의 물처럼. 그리고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는 예민해지기도 했다. 나의 말은 모호하고 추상적이었다. 매사 간절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두리뭉실하게 여겼다. 당신은 때때로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모호한 말과 행동을 답답해하기도 했다. 나는 간결한 당신의 사고에 때로 상처받았다.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의 것들을 그토록 단정 지어 말하는 것을 마뜩잖게 여겼다.
그러나 돌이켜본다. 우리는 달랐기 때문에 서로에게 끌렸다. 내가 갖지 않은 것을, 내가 믿어본 적 없는 것을 너는 알고 있었다.
당신은 발전된 내일을 믿었고, 나는 그 과정의 아름다움을 믿었다. 당신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했기에, 나에겐 되돌아볼 과거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을 함께 살아갈 수 있었다. 가끔은 서로가 서로에게 답이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문제에게 답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나와는 다른 시야로 더 넓게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였다.
길어진 늦여름의 밤
나는 끝내 선언했다.
당신으로부터 나는 채워졌다고
조금 더 많은 것을 마음에 담은 날, 나는 그 쌓인 것을 남기고 또 기록한다.
나를 위해서, 당신을 위해서, 또 다른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