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담

by 김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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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뽐낼 무용담. 그것이 내겐 없었다. 호방하게 세상에 맞선 이야기, 역경을 딛고 우뚝 선 이야기, 뛰어난 능력으로 성과를 이뤄낸 이야기, 모두 나의 것은 아니었다.


세상은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를 외쳤다. 돋보이게 위해, 우뚝 서기 위해, 혹은 떠벌리기 위해서는 늘 저 너머를 향해야 했다. 하지만 내겐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


#더 빨리

언젠가 친구의 오토바이를 얻어 탄 적이 있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그때, 끈을 꽉 조인 마스크가 오토바이가 일으키는 바람에 무기력하게 휘날리는 것을 느꼈다. 매달릴 의지가 전혀 없다는 듯이. 맥을 못 추는 마스크처럼 나는 떨어질 것만 같았다. 줄어들지 않는 속도가 두려웠다. 감당할 수 없는 이대로 부딪힐 것만 같았던 그 속도가. 살갗을, 옷깃을, 스치다 못해 들끓게 만들던 속도가 꼭 나를 해칠 것만 같아서 나는 스스로를 내려두었다.


#더 멀리

집을 떠나 멀리 나선 기억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가야 했기에 떠나야 했던 군대 따위의 사건은 차치하고서라도, 제 힘으로 멀리 나가야겠다고 결심한 적은 없었다. 언젠가 갑작스레 유럽으로 다녀온 7박 9일의 패키지여행이 있었으나 - 그것은 생각보다도 무척 험난하였다 - 편안한 비행기와 버스 안에서 나는 도버해협을 건넜고 알프스를 넘을 수 있었다. 한니발도 해내지 못한 여정이었다. 물론 그에게 코끼리 대신 비행기와 버스가 있었다면 그렇게 했었겠지만. 먼 곳을 걷기엔 평발과 무다리였고, 금방 지치는 체력 탓에 반나절에 한 번씩 아이스커피가 필요하였다. 그렇기에 나는 멀리 나아갈 수도 없었다.


#더 높이

높은 곳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는 일. 누군가에겐 꿈이자 업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부자들이 왜 한강뷰 고층 아파트를 고집하겠는가.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드넓은 시야를 오롯이 자신만이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나 역시 높은 곳에 오르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에겐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땅 위에서는 미처 몰랐던 두려움이 공중에서 펼쳐졌다. 개천의 출렁다리 따위에서도 나는 공포감을 느꼈다. 나는 높은 곳에서의 시야를 누릴 자격이 없었다. 높은 곳에 오르는 것 자체도 고역이었다. 아주 오래전, 내가 세상에 태어난 지 채 4년도 안 됐을 때, 누군가의 등에 업혀 설악산 울산바위에 오르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아이를 업고 등산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때의 나에겐 빨간 계단과 구름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던 공포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두려움과 고단함,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결국 높은 곳에도 오를 수 없었다.


다시 나의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나에겐 으스대고 과시할만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 없어도 이래저래 살아갈 수 있었고, 특별한 일들 대신 삶의 사소한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되짚고 이야기하는 것에 능하게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어쩜 이렇게 시트콤 같은 에피소드가 많냐고 묻기도 하였으나, 어떻게든 할 말을 만들기 위한 처절함에서 비롯된 일이었을 것이다.


그다지 자랑할 것이 없는 삶도 어떻게든 살아진다. 하루하루, 거듭된 이 축복과 절망의 나날 속에서 나는 한방의 도전 대신 꾸준하기로 결심한다. 무언가를 해내는 데 있어 속도가 빠르지 않고, 더 멀리 높이 나아갈 재간이 없었기에 택한 일이었다. 꾸준한 데는 특별한 것이 필요 없었다. 딱 필요한 만큼의 힘을 들여 적당히 나아가면 그만이었다. 숨이 찰 때는 잠시 쉬어가면 그만이었고 방향이 맞는지 되돌아보면 그만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무용담 아닌 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나에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자체도

대단히 용감한 일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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