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의 기록

by 김민영

세상이 온통 뒤흔들리던 날이 있었다. 단 하루도 편한 날 없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건 표류였다. 그렇게 거친 파도가 몰아치던 날들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늦은 밤, 잠에 들기 전 두 손을 모으고 되도 않는 말들을 주절거리며 기도하는 수밖에는.


그러면서도 나는 그 기도가 언젠가 끝이 날 것임을 알았던 것 같다. 이 파고를 넘어선 뒤에는, 절박함이 사라지고 난 뒤에는. 그래서 나는 미리 용서도 구했다. 먼 훗날 기도를 망각하더라도 노여워 마시라는 바람을 전했다.


그러나 어떤 용서가 그리 쉬울까. 어느 주말 감상한 영화 속 주인공은 용서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되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기도 속에서 구했던 것도, 바랐던 것도 용서였다는 걸. 당신들로부터의 용서이자 당신에게 향하는 용서였다. 그 모든 것이 그리도 어려울 줄은 그때는 몰랐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거리에는 부쩍 플랜카드가 많아졌다. 단풍과 낙엽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온갖 색으로 치장한 모습이었다. 온통 세상의 성과에 대한 자축과 기념에 대한 것들이었다. 현수막에 따르면, 세상은 분명 더 나은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바삐 걷는 사람들도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진보는 오직 각자로부터 완수될 수 있는가. 깨끗한 거리와 우뚝 선 빌딩들, 여전히 지어지는 도로들 모든 위대한 업적들이 착취로 성취되었다면. 사회는 오늘도 누군가의 것을 빼앗고 흡혈하여 일어서는데, 그렇다면 저 플랜카드들은 대체 무엇을 누구에게 자축하고 있는가. 플랜카드는 세상의 빛나는 면들을 보여주었지만, 그 화려함 아래 가려진 그림자를 나는 보았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길을 걸었다. 남미 노동자의 수고로움과 썩지 않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때로 나는 착취함으로서 존재하였다. 언젠가 나를 집어삼킬 것 같던 파도에 떠내려갔음에도. 나의 작은 걸음이 세상을 삼키는 파도를 만들고 있었다. 지난날의 기도는 그 죄에 대한 용서를 바랐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기도하지 않는 나는 어떤 입장에 서있는 것일까. 무수히 많은 플랜카드들을 마주한 채 신호를 기다린다. 빨간 불. 횡단보도를 건널지 말지는 나의 의지에 달린 일이 아니었다. 아닌가, 어쩌면 나의 의지로 해낼 수도 있었을까.


착취당하던 나는 세상을 착취한다. 착취의 사슬 속에서 나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정말 용서였다는 말를 곱씹어본다. 그제서야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조금은 두려운 기색을 한 채 말할 수 없는 죄를 지은 것 마냥.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높고 푸르렀다. 구름이 하늘을 잠식한 것은 감시와 억압을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무수한 죄인들에게 경고하기 위하여.


그리고 생각한다.

언젠가 다시 기도할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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