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충동적인 여행의 결말은 힐링보다는 숙취에 가까웠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뜬 뒤, 조금 늦게 출근하는 편을 택했다. 얼마 전 전사적으로 시작된 유연근무제 덕이었다. 말로는 유연하지만 실상은 전혀 유연하지 않던 정책이었으나, 30분 정도 늦게 가는 게 가능하다는 점이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조금은 여유로운 전철에 몸을 싣고 잠시 단잠에 빠진다.
느지막이 사무실에 도착하면 늘 커피가 간절해진다. 사무실의 커피머신을 이용해도 좋으련만, 굳이 카페의 비싼 커피를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돈도 얼마 없고, 신용카드를 돌려 막는 비루한 직장인이지만 기어코 기분을 낸다. 기분이라도 좋으면 됐다. 그렇게 사무실에 도착하고, 오늘은 조금 더 여유로울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을 하자마자 여기저기서 업무가 빗발쳤다. 모두 내가 마음을 놓은 탓이었다.
점심엔 회사 근처의 함경도 음식점에서 가릿국밥을 먹었다. 가릿?이라는 말이 어딘가 웃기고 낯설게 느껴져서. 알고 보니 갈비의 함경도 사투리라고 했다. 유난히 춥던 겨울 한파를 녹여주는 따뜻한 음식. 역시 추운 북방의 음식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와 점심을 먹으며 무엇을 먹고살아야 할지 토론했다. 사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더 가까운 대화들. 그러나 서로만 생각하기엔 각자에게 놓인 것들이 너무도 다채로웠다. 우린 왜 우리로서만 살아갈 수는 없었을까. 발목을 잡고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이 이토록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대화의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머쓱하게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놈의 두쫀쿠가 내내 유행이었다. 팀원 중 하나가 주말에 만든 두쫀쿠를 나눠먹자며 라운지로 우리를 소집했다. 바삭한 카다이프 필링이 온몸을 전율케 했다. 이렇게 맛있는 걸 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달콤함도 잠시, 나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무언갈 만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러나 그럴만한 재주가 없어서. 마침 카다이프가 부어오른 목에 닿아 아프게 했다. 그냥 건강하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집에 돌아가는 길 찬바람이 거셌다. 꼭 모든 걸 다 휩쓸어 버릴 것 같이. 비좁은 골목을 비집고 들어와 이토록 아리게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나는 온종일 이유를 생각한다. 세상엔 까닭 없는 일들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으면서도. 왜 자꾸 원인을 찾고 탓을 하려고만 하는지. 이것도 직업병인가 싶어 헛웃음이 났다.
모처럼 운동에 다녀왔다. 잦은 야근으로 굳어버린 몸이 아직 적응이 되지 않는 듯했다. 유난히 숨이 가빴고 땀을 많이 흘렸다. 거친 운동이 끝나고서 탈진하듯 쓰러져버렸다. 최선을 다하는 삶은 이래야만 하는 것일까. 조금은 게으르고 나른하게 살고 싶은데. 자꾸만 사방에서 모진 바람이 불어와 정신을 차리라고만 말한다. 조금 더 다정하고 의미 있는 것들을 찾을 수는 없을까. 나에게 조금 더 많은 시간과 여유가 주어진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