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일주일 넘게 영하 10도를 밑도는 한파가 가실 줄을 몰랐다. 삼한사온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살을 파고드는 강추위에 어쩔 줄을 몰랐다. 의도치 않게 무채색 패딩을 연신 입어야 했고, 이렇게 추울 줄 알았다면 진작 다른 겨울옷도 미리미리 준비해 둘걸. 대책 없는 강추위에 졸지에 단벌신사가 되어버렸다. 다음 겨울엔 조금 더 두x터운 겨울 옷도 장만해야지.
지난 주말 서울엔 모처럼 함박눈이 내렸다. 늦은 밤 쏟아지듯 내려온 눈은 밤새 온 도심을 뒤덮어버렸다. 순백의 세상이 그렇게도 아름다워 보였는데. 도시에 내린 눈은 곧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염화칼슘과 무도한 제설차량이 기다릴 틈도 주지 않은 채 그들을 휩쓸고 가버렸다. 그늘 밑 옹기종기 모여있던 순백의 눈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고 오직 찬 바람 만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 매서운 추위의 고향인 저 멀리 캄차카에도 무수히 많은 눈이 쌓였다고 했다. 그러나 AI 따위로 조잡하게 만든 가짜 폭설 영상이 러시아 전역에 퍼지면서, 캄차카의 오늘을 호도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현실의 진실에 열광하지 않았다. 자극적이지 않으면 오늘도 외면받을 처지라는 것이 가슴 아프게 했다.
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나조차도 오늘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생생한 감각과 경이로운 순간들을 뒤로한 채 픽셀 단위의 작은 세상에 갇혀 있다가 - 점점 먼 것을 잘 보지 못하게 되었다. 계절의 참혹함과 기적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이렇게 흘려보내고 있다니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빌딩들이 입김을 내뿜는 겨울의 테헤란로를 걸으며, 직장 동료들은 나에게 더 두툼한 겨울옷이 필요해 보인다며 핀잔을 주었다. 그토록 춥다는 말을 내뱉으면서 한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들린 것이 못내 우스워 보여 웃음으로 무마하였다. 문득 언젠가 이 계절을 그리워하게 될까, 스스로 되물어보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렇지 않을 것 같아 얼른 건물 안으로 몸을 피했다.
차가워진 공기에는 별 수 없이 콧물이 흘러나왔다. 꽉 막힌 코에 목소리까지도 잠겨가는 것을 느낀다. 잔병치레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이 계절을 잘 버텨내고 있다. 이 시간을 잘 이겨낸 뒤엔 따뜻한 봄을 온몸으로 반길 것이고 정신없이 바쁜 날들을 보낼 것이고 다음 겨울에 입을 따뜻한 겨울옷도 조금 더 장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