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

겨울

by 김민영


일주일 넘게 영하 10도를 밑도는 한파가 가실 줄을 몰랐다. 삼한사온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살을 파고드는 강추위에 어쩔 줄을 몰랐다. 의도치 않게 무채색 패딩을 연신 입어야 했고, 이렇게 추울 줄 알았다면 진작 다른 겨울옷도 미리미리 준비해 둘걸. 대책 없는 강추위에 졸지에 단벌신사가 되어버렸다. 다음 겨울엔 조금 더 두x터운 겨울 옷도 장만해야지.


지난 주말 서울엔 모처럼 함박눈이 내렸다. 늦은 밤 쏟아지듯 내려온 눈은 밤새 온 도심을 뒤덮어버렸다. 순백의 세상이 그렇게도 아름다워 보였는데. 도시에 내린 눈은 곧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염화칼슘과 무도한 제설차량이 기다릴 틈도 주지 않은 채 그들을 휩쓸고 가버렸다. 그늘 밑 옹기종기 모여있던 순백의 눈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고 오직 찬 바람 만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 매서운 추위의 고향인 저 멀리 캄차카에도 무수히 많은 눈이 쌓였다고 했다. 그러나 AI 따위로 조잡하게 만든 가짜 폭설 영상이 러시아 전역에 퍼지면서, 캄차카의 오늘을 호도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현실의 진실에 열광하지 않았다. 자극적이지 않으면 오늘도 외면받을 처지라는 것이 가슴 아프게 했다.


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나조차도 오늘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생생한 감각과 경이로운 순간들을 뒤로한 채 픽셀 단위의 작은 세상에 갇혀 있다가 - 점점 먼 것을 잘 보지 못하게 되었다. 계절의 참혹함과 기적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이렇게 흘려보내고 있다니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빌딩들이 입김을 내뿜는 겨울의 테헤란로를 걸으며, 직장 동료들은 나에게 더 두툼한 겨울옷이 필요해 보인다며 핀잔을 주었다. 그토록 춥다는 말을 내뱉으면서 한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들린 것이 못내 우스워 보여 웃음으로 무마하였다. 문득 언젠가 이 계절을 그리워하게 될까, 스스로 되물어보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렇지 않을 것 같아 얼른 건물 안으로 몸을 피했다.


차가워진 공기에는 별 수 없이 콧물이 흘러나왔다. 꽉 막힌 코에 목소리까지도 잠겨가는 것을 느낀다. 잔병치레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이 계절을 잘 버텨내고 있다. 이 시간을 잘 이겨낸 뒤엔 따뜻한 봄을 온몸으로 반길 것이고 정신없이 바쁜 날들을 보낼 것이고 다음 겨울에 입을 따뜻한 겨울옷도 조금 더 장만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1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