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

겨울

by 김민영

밤새 두꺼운 눈이 거리에 쌓였다 오래간만에 아침밥을 지었고 유난히 찰지고 새하얀 밥이 완성되었다 간밤에 잡념과 축구경기 따위에 단잠을 빼앗긴 채 몽롱한 기색이었으나 거리로 나섰다


새하얀 눈보라가 몰아치던 날 너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땅 속에 묻었다고 했다 멀리서 보기로 삼일장은 짧게만 느껴졌으나 슬픔의 당사자에게는 이별하기까지 적당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나도 하루에 2시간 정도는 땅 속에 잠자코 묻혀있었다 이 수많은 영혼들과 일터인지 지옥인지 모를 곳으로 향하는 동안 이상한 조바심 따위를 느낀다 이렇게 우연히 갑작스레 죽게 된다면 그다지 억울하지도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새해의 한 달도 훌쩍 지나갔다 새로운 달을 맞아 새로운 어젠다를 논해야 했다 그렇게 12번을 반복하면 한 해가 지나고 또 다른 새해 복을 빌겠지 작년에 머물러있던 먼지 쌓인 달력의 시간을 비로소 오늘로 맞춰놓는다 그러나 나는 또 달력 넘기는 것을 잊어버릴 것이다


세상의 퇴행을 목도하는 중이다 시간은 앞으로 가는 중인데 누가 세상의 달력을 넘기지 않았던 걸까 미래가 늘 장밋빛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벨에포크를 지나 처절한 살육을 겪어야 했던 한 세기 전 조상들처럼


오래된 대만의 영화를 보고 싶었다. OTT와 이런저런 자료실을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끝내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아무 흔적도 없었던 것처럼 오늘이 흘러간 뒤엔 오늘을 꺼내볼 수 있을까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그러나 그다지 선하지도 의지가 있지도 않던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데 끝내 일조하고 말 것이다


이 순백의 눈 위로 얼마나 많은 슬픔이 아로새겨질 것인가 그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인가

아주 먼 훗날엔 한반도에 눈도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그때가 되면 그 누구도 눈을,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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