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버스 부인의 위엄, 옥댄버 영접의 순간
고대하던 뮤지컬 <레베카> 관람 당일. 채비를 서둘러 다소 일찍 극장에 도착했다. 티켓팅 시작 몇 시간 만에 전 좌석이 매진된 뮤지컬답게, 텅 비어있던 좌석들이 점차 관객들로 꽉 메워져 갔다. 옥주현 배우의 음성 안내와 함께 방역과 백신 접종 체크를 꼼꼼히 한 뒤, 조명이 꺼지며 장장 3시간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의 흡입력은 실로 대단했다. 극의 1부는 주인공 '나'가 막심을 통해 맨덜리 저택으로 입성하게 되기까지의 과정, 저택에서 맞닥뜨린 댄버스 부인의 서늘한 눈빛과 질투 어린 행동을 중심으로 흘러갔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뒤 이어진 2부의 서막은 레베카를 향한 댄버스 부인의 광기 어린 부르짖음으로 시작한다. 이 부분이 바로 우리가 익히 듣던 노래 '레베카'다.
옥주현 배우의 연기와 노래에 대한 이야기는 마지막에 주요하게 다루는 것으로 하고, 그 외에 극의 중점적인 흐름을 이끄는 배우들의 실력도 가히 혀를 내두를 만하다. 특히 개인적으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생각하는 배우는 주인공 '나'가 모시던 고용주 '반 호퍼 부인' 역의 한유란 배우였다. 반 호퍼 부인은 속물적이고 수다스러운 성격으로 '나'를 업신여기는 인물인데, 특유의 거만한 제스처와 방정맞은 목소리를 찰떡같이 표현해주어 얄미울 정도였다. 악역 연기를 너무도 잘한 나머지 현실에서도 시청자의 미움을 샀다던 어느 배우의 기사가 떠올랐다.
주인공 '나' 역의 임혜영 배우는 댄버스 부인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또다른 매력으로 돋보였다. 반 호퍼 부인에서 댄버스 부인에 이르기까지, 쉴새없는 압박과 무시를 당하며 정체성을 발현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이를 증명하듯 레베카라는 작품에서 본인의 이름 하나 등장하지 못하고 줄곧 '나'라는 1인칭으로 대체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 막심을 지키는 강인한 여성으로 성장해가는데, 이때 점차 담대한 목소리와 강한 제스처로 변모해가는 생생한 모습을 뮤지컬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댄버스 부인' 역의 옥주현 배우. 댄버스 부인은 전 마님인 레베카를 칭송하며 새로운 안주인 '나'의 존재를 끊임없이 부정하는 인물이다. 미루어 짐작건대 관객의 절반 이상이 옥댄버(옥주현 배우가 연기하는 댄버스 부인을 줄여서 칭하는 말.)를 보러 왔다고 해도 무방할만큼 그녀는 뮤지컬 레베카의 티켓파워를 일으킨 주역이라고 볼 수 있다. 실물을 영접해 직접 체감해 본 결과, 옥댄버를 향한 기대치가 얼마든지 솟아있다 하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특히 '나'에게 레베카의 모습을 자꾸 덧대고 그녀의 노트, 침실 속 옷가지 하나도 함부로 손대지 못하게 하며 광기 어린 애정을 비추는 과정 가운데 등장하는 노래 '레베카 나의 레베카…'.
이따금씩 유튜브나 TV를 통해 노래의 한 소절을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실제는 그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의 감격스러운 울림이 전해졌다. 온 극장 전체가 섬뜩하고 애처로운 댄버스 부인의 목소리로 뒤범벅이 되었는데, 털끝 한 올 한 올이 모두 쫑긋 일어서는 느낌이라고 하면 아주 조금 상황 표현이 될 것 같다.
공연이 끝난 뒤 문밖을 나서며 건넸던 멘트는 "옥댄버 성량이 신의 경지다.", "댄버스 부인이 등장할 때마다 온몸에 계속 소름이 돋았다."는 감탄이었다. 댄버스 부인만 성능 좋은 마이크를 따로 쓰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덧붙일 정도였으니.
마침내 목표로 하였던 레베카 3종(책, 영화, 뮤지컬)을 모두 읽고 관람하였다. 한 작품을 3가지의 분야로 나눠 접해본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한 줄의 문장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도 3가지 방향으로 접근해 볼 수 있었던 색다른 기회였다. 에너지를 모아 차기 정복 세트도 물색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