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경한 뒤로 나에게 고향은 몸과 마음을 휴식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 덕에 어떤 잡념 없이 오롯이 쉼에 있어 온 마음과 힘을 다할 수 있다. 어버이날을 맞아 오래간만에 순천에서 만난 모녀는 하나부터 열까지 틈바구니 없는 일정을 소화하기보다는 도란도란 사는 얘길 나누며 하릴없이 순천 동네를 거닐기로 했다.
모녀가 도착한 '문화의 거리'는 과거 순천의 중심지였던 중앙동에 위치해 있다. 문화 예술과 관련된 상점과 아트센터들이 놓여 있는데, 현재는 중심지가 다른 곳으로 이전되면서 인적이 드물어진 곳이었다.
쨍한 햇볕 덕에 푸른 나무와 곳곳에 핀 들꽃들이 더욱 싱그러워 보였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내 감성도 변화해간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 바로 길거리에 핀 들꽃과 나무를 바라볼 때다. 비와 볕을 견뎌내며뿌리내린 자연에서 꾸며내지 않는 건강함과 아름다움을 배운다.
가벼운 피로감을 기분좋게 느끼며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였다. 역시 순천에 오면 화려한 진수성찬보다는 소담스러운 시골 밥상이 가장 맛스럽다. 곤드레밥과 꼴뚜기젓갈 그리고 직접 담근 김치들이 주인공이 되는 밥상에서 소고기는 조연이다.
그냥 동네길을 거닐고 자연을 보고 집밥을 먹은 하루였다. 그 무탈한 무용(無用)함이 얼마나 편안하고 아름다운 순간임을 이제는 어렴풋이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