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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알감자 Dec 30. 2022

어른인데, 동심은 있고 싶어요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가 무섭게 칼바람에 살결이 빨개지는 겨울이 돌아왔다. 매일 아침, 따뜻하게 데워진 이불과의 이별이 가장 힘든 계절.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오른 출근길. '두둥- 두둥-'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지하철 차창 밖 풍경을 멍하니 바라본다. 엊그제만 하더라도 출렁이던 물결 위로 얼음 조각이 둥실 떠다닌다.


'제대로 겨울이 왔구나. 어느덧 한 해가 다 흘렀구나….'


대개의 직장인들에게 연말은 정체불명의 송년행사가 우후죽순 쏟아지는 시기이다. 더군다나 앤데믹 이후 처음 맞이하는 한 해의 마지막을 그저 그렇게 흘려버리고 싶지 않은 이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일련의 회식들은 K-직장인의 일원인 나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평균 약 2시간 반의 시간 동안 밀물과 썰물처럼 빠져가는 술잔과 이야기의 향연.


예전의 나는 내가 겪고 있는 힘듦이 세상에서 가장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 남들이라고 해서 사정이 없었겠냐만은 무슨 근거에서인지 그들이 나만큼 힘들진 않아 보였다.

그런데 싱거울만큼 '시간'은 참 많은 것을 해결해 주었다. 힘에 부치는 순간을 겪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며, 힘듦의 우위를 비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를 배우게 해 주었다.


자식 학자금을 위해 버틴다는 과장님, 일과 사람에 치여 힘든 대리님, 일도 사람도 아직 어려운 신입‥.

우리는 저마다 품에 안은 속사정 일부분을 꺼내어, 어른이라는 삶의 부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들 조금은 가라앉은 감정으로 회식을 매듭짓고 문 밖을 나섰다. 그때였다.

훅- 밀려오는 찬바람과 함께 눈썹 위로 살며시 내려앉은 눈송이가 보였다. 어느덧 바깥은 함박눈이 내려와 있었다. 우리는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얗고 뽀얀 눈밭에서 '뽀드득-' 소리를 내어가며 눈길 위를 걸었다. 이윽고 약 이십 년의 간극을 아우르는 세대 간 대통합이 이루어졌다.


"과장님. 저 눈오리 하나 갖고 있는데 같이 만드실래요?"

"우리 아들 눈오리 좋아하는데, 지금 만들어서 사진 찍어줘야겠다."

"저도 하나 만들래요. 눈이 너무 예쁘게 오지 않아요? 연말 선물 받은 것 같아요."


어쩌면 우리는 '어른이 되어야만 하기에 어른스러워지려고 노력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리 안에 동심이 언제나 자리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른으로 살다가 힘에 부치는 순간이 올 때, 유치하고 철없던 동심이 우리에게 잠깐만 방문해 주길.


어른이지만, 동심은 늘 곁에 머무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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