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 Mania] 스토리가 있는 구름 감상
초인종이 울렸다. 방문할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현관에 비친 그림자를 살피며 다가갔다. 현관문을 열자 옆집 마사 할머니가 오래된 소니 바이오 노트북을 들고 서 있었다. 수명을 다한 배터리가 더 이상 충전되지 않아 노트북과 함께 들고 다니는 큼지막한 사각형 어댑터가 달린 전원 케이블과 마우스를 위에 올리고 서 있었다. 마사 할머니의 바이오 노트북은 소니에서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 영광스러운 과거의 유산이기도 했고, 한 때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으나 이제는 지나간 과거의 유물이 되어가는 마치 할머니의 인생과 같았다.
지난달에, 겨우 이메일 확인하고, 50년째 빠짐없이 보고 있는 드라마 에머데일(Emmerdale)을 인터넷으로 보는데 자꾸 컴퓨터가 느려진다며 도움을 요청하였다.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하면서 매일매일 조금씩 쌓여 짙은 회색의 때로 남은 은색 키보드 위의 먼지처럼, 낡은 바이오 노트북의 MS 윈도우 시스템도 쓸데없는 시작 프로그램과 주인의 허락도 없이 시치미를 떼며 모른 척 숨어 있는 프로그램들이 쌓여 있었다. 구형 노트북은 어쩔 도리가 없어서 "노트북이 죽을 때까지 그냥 쓰시라" 말씀드리고, 윈도우 시스템도 업데이트하고, 보안 패치도 하고, 덕지덕지 붙어서 노쇄한 노트북을 힘들게 한 프로그램들을 제거해 드렸다. 마사 할머니는 "사람도 이렇게 한 번씩 정신을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으면 좋지 않겠나"는 농담을 건네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노트북을 내려 놓고 앉은 할머니에게 커피를 한 잔 내어드리며, 또 컴퓨터가 애를 먹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그럼 왜 컴퓨터를 들고 오셨는지 물으니, 어디에 무엇을 보내야 하는데 잘 안된다고 하신다. 그리고는 나에게 질문을 하신다. "너 그거 들어봤어?" "아,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들어는 본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언젠가 트럼프 대통령이 선전했던 새로운 의료 기기 그런 것 아니냐?"라고 반문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신 기술이 들어 간 의료 기기는 맞아."라고 반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치 천체 망원경으로 새로운 별을 발견한 천문학자처럼 상기된 얼굴로 마사 할머니는 설명을 시작했다.
독일에 본사가 있다. 새로운 기술의 치료 방법이다. 잠을 자는 동안에 치료가 진행되어 아침이면 신체가 완전히 새로워진다. 치료 센터에서도 가능하지만, 자신의 집 침실에서도 치료가 가능하다. 완전히 새로운 초우주급 울트라 캡숑 짱 기술이 적용된 것이다. 치료 효과에 대한 여러 사람의 증언이 있다. 인터넷에 나온다. 거기에 모두 다 있다. 자기도 안내대로 등록을 하였다. 자기 집 침실에서 치료를 하려면 침대 사진 3장이 필요한데 어떻게 보내는지 모르겠다.
이게 뭐지? 뭔가 이 싸한 느낌적인 느낌은 뭐지? 그래서, 나의 질문은 시작되었다.
1. 침대 사진 3장은 왜 필요한가? - 치료에 대한 승인을 받으려면 먼저 사진을 보내야 한다. 승인을 받고 나면, 본사에서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
2. 자기 침대에서 치료는 어떻게 하는가? - 잠자리에 들면서, 침대에 누워 "00이 작동되었다(00 is activated)."라고 말하면 자동으로 감지되어 치료가 시작된다. 자는 중에 치료가 되어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완전히 새로운 것처럼 개운하게 된다.
3. 그것이 치료 절차의 전부인가? - 그렇다.
4. 침대에 휴대폰 같은 것을 옆에 놓나? - 필요 없다.
5. 혹시, 비용 같은 것을 지불했나? - 아직까지, 테스트 중이라 돈을 보내 준 것은 없다.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현대 과학 기술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첫째, 현재 인간이 겨우 스마트폰의 GPS 기능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휴대폰의 위치 추적 기술을 사용해서 겨우 휴대폰 소지자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수준이다. 그나마, 휴대폰을 끄거나 심카드를 빼 버리면 개인의 위치를 추적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침대 곁에 GPS 송수신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을 두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침대 사진 3장만 등록하여 침대의 위치를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침대에 누워서 '작동되었다'는 말만 하면 자동으로 치료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마이크나 송수신 장치도 없이 어떻게 해당 음성이 감지되어 작동이 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셋째, 정확히 정해진 위치에 치료 기능이 있는 전파나 파장을 원격에서 어떻게 보낼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 넷째, 그렇게 편리하고 강력한 치료 기능이 있는 의료 기술이 있다면 왜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다섯째,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고 모두 공신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그런 내용이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생성할 수 있고, 공증되지 않는 사용기나 증언을 얼마든지 만들어 올릴 수 있다.
아직까지 돈을 보내는 단계까지 진행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인터넷에 침대 사진 올리게 하고, 승인 메일 같은 것 보내고, 비용을 10유로 요구한다면, 이것은 신종 피싱이나 마찬가지다. 무슨 샘플이나 기구를 보내준다면 진짜든 가짜든 만들고 보내는 비용이 들겠지만, 이렇게 온라인으로 하면, 한 사람에게는 겨우 10유로지만 몇 백 몇 천명이 쌓이면, 원가가 하나도 들지 않는 수익이 진짜 좋은 사업이다. 내가 보기에는 위험하다.
내가 장황한 설명과 진단을 늘어놓는 동안에 마사 할머니는 불쾌함을 감추려고 노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자신이 믿고 의지하고 싶은 견고한 벽에서 하나 둘 셋 셈을 해가면서 벽돌을 깨 부수고 있으니 좋을 리가 있겠는가. 마사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자기들 사업이 크게 영향을 받을까봐 기존의 의료계에서 강력하게 막고 있는 상태라 지금까지는 세상에 진실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외계인의 기술과 양자 물리학이 적용된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라고 하더라." 나는 더 가혹하게 일침을 날렸다. "어떤 외계 기술이라고 하던가요? 기술을 사용했으면 어떤 기술인지 설명을 할 수 있잖아요?" "할머니는 양자 물리학이 무엇인지 아세요?" "사람들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둘러댈 때 외계 기술이라고 하는 거예요." "양자 물리학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쉽게 알기 어려우니 무언가 이해하기 힘든 과학 기술이 들어간 것처럼 하는 거예요." 이렇게 진도가 나가자 할머니는 커피 잘 마셨다며 급한 일이 있는 듯이 일어나 가셨다. 신기한 치료 기술을 자랑하러 왔다가 지적질을 당하고 떠나는 할머니의 태도는 '내가, 자신이 알아낸 신비로운 치료 기술에 대해 알아듣지도 못하고, 도저히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하다'는 듯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세상 누군가는 알고 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고, 세상 어느 누구도 모르는 것, 즉, 아직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때로는,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구별하지 않는다. 귀찮을 때는, 대충 두리뭉실하게 묶어서 '신비로운 것'으로 퉁쳐버리고, 자신의 무지함에 면죄부를 발급한다. 마사 할머니는 '무지함'을 '신비로움'으로 치환하고 싶어 하신다. 그 틈을 신종 피싱 업체가 파고들고 있다. 오래된 할머니의 노트북처럼, 육신(하드웨어)은 어쩔 수 없어도, 할머니의 지식(소프트웨어)은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해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마사 할머니가, 제발, 10유로를 송금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ETF0QpWUjGuNrTQWtosxx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