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이상했다. 엉덩이 쪽의 눅눅함이 평소와 달랐다. 설마? 아뿔싸. 다섯 살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아무도 모르게 감출 수 있을까?"
슬쩍 아래에 손을 넣어 보았다. 찔끔 실수를 한 정도가 아니었다. 화장실에서 편하게 볼일을 보듯 방광에 한 방울도 안 남을 정도로 시원하게 싸 갈겨 놓은 수준이었다. 기억이 하나도 나지는 않았지만, 오줌의 양으로 볼 때 꿈속에서 대형 화재를 충분하게 진압하였을 듯했다.
"아, 어쩌지?"
깊은 잠에 잠긴 척 두 눈을 꼭 감고 손으로 주변을 더듬었다. 삼각팬티를 타고 넘쳐흘러 엉덩이를 적시고, 위쪽으로는 허리 아래쪽까지, 아래쪽으로는 엉덩이에서 한 뼘 정도까지 이불을 적시고 있었다. 대책이 없었다. 그래서, 눈을 꼭 감고 천에 둘둘 말려 수천 년을 견딘 미이라처럼 한 참 동안 젖은 이불 위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이 순간에 머리에 뿔이 달린 악마가 나타나서 "내가 오줌을 모두 말려 줄게."라고 제안하면 어린 영혼까지 팔았을 것이다.
"빨리 안 일어 나나?"
평소보다 늦은 시간까지 이불속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아들을 재촉하며 어머니께서 이불을 확 걷었다.
"아이고, 이기 뭐꼬?"
하늘이 무너졌다. 아직 모르는 척, 잠에 덜 깬 척 실 눈을 뜨고 상황을 살폈다.
"어서 안 일어나나! 이불까지 다 젖었네. 이걸 우짜노. 우째."
나는 팬티를 벗은 채 엉거주춤 벽에 기대어 서서 현장 검증에 끌려 온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젖은 이불이 분리수거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머릿속이 하얗다. 처음 있는 일이라 어떤 벌이 내려질지 짐작도 하기 어려웠다. 다섯 살에게는 대응이 불가능한 그저 난감한 상황이었다.
엄마가 입혀 준 까칠까칠한 새 팬티의 촉감은 기분이 좋았다. 점점 차가워지는 젖은 팬티와 눅눅한 이불 위에서 상당한 시간을 견뎌낸 나의 엉덩이는 안도했다. 우리 엄마는 너무 마음이 좋다.
"너 엄마 심부름 하나 해라."
미안해서 어찌할 줄 모르고 어정쩡하게 집안 구석을 찾아다니던 나에게는 현장을 벗어나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평소와는 달리 심부름을 가라는 소리에도 반가운 얼굴로 달려 나갔다.
"옆집 아줌마한테 가서, 우리 집에 소금이 없어서 그라이 소금 좀 얻어 온나."
실망시킨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갔다.
" 아줌마, 엄마가 소금 좀 주라 카는데 예."
옆 집 아줌마는 이른 아침에 심부름을 온 착한 옆집 아들을 지나치게 환한 웃음으로 맞이해 주셨다. 내 말을 듣자마자 아주머니는 부엌으로 황급히 들어가셨다. 아주머니께서 소금을 갖고 나오기를 기다리고 서 있을 때, 밥주걱을 들고 나와서는 다짜고짜 나의 빰을 때렸다. 분명 들어갈 때는 웃으면서 들어갔는데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셨는지 몹시 당황하였다.
나는 울었다. 목 놓아 울었다. 서러워서 울었다. 소금을 조금 얻으러 왔다고 때리는 아주머니가 야속해서 울었다. 내가 너무 서럽게 큰 소리로 울자 아주머니는 당황해하시면서 나를 달랬다. 손에 들고 간 공깃밥 그릇에 소금을 가득 담아 주었다. 울고 서 있는 나의 눈물을 닦아주며 달랬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반갑게 하더니, 갑자기 빰을 때리고, 얻으러 왔다고 빰을 때렸으면서도, 소금은 가득히 채워주는 어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며, 울음으로 어깨를 들썩이며, 한 손에 소금 그릇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이 가까워지자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하며 올라오는 어머니가 보였다. 어머니의 웃는 얼굴을 보자 참았던 서러움이 터져 나왔다. 소금이 없어서 아침부터 남의 집에 소금을 빌리러 아들을 보낸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우리 집에 소금이 없다는 이유로 뺨을 맞은 것이 너무 억울했다.
나는 들고 있던 소금 그릇을 던졌다. 아들에게 이런 심부름을 시켜서 뺨을 맞게 만드는 어머니에 대한 항의와 시위였다. 어머니의 심부름을 온 것뿐인데, 내가 뺨을 맞은 것이 억울하고 서러웠다. 길가에 서서, 나는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고, 나의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어머니의 웃음소리도 커졌다.
그날 아침을 이야기할 때마다 어른들은 웃었을 뿐, 그날의 상황을 아무도 나에게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사실, 설명한다고 해도 다섯 살짜리에게 어떤 위안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우리 집에 소금이 없어서 남의 집에 얻으러 갔다가 얻어맞고 온 것으로 믿고 있었다.
나는 잠자리에 오줌을 싸는 실수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나의 관점에서는 그날이 아주 예외적인 실수였을 뿐이다. 어른들의 관점에서는 오줌을 싼 그날, 소금을 얻으러 보냈고, 뺨을 때려서 혼을 내었고, 혼이 난 덕분에 나의 오줌싸개 버릇은 고쳐졌다고 믿을 것이다.
"잠자리에 오줌을 쌌을 때는 따끔하게 혼을 내야 버릇이 고쳐진다. 우리 아들도 오줌 쌌다고 혼이 나고는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다."
전날 밤에 실수한 아이들은, 어른들 사이에 구전되어 온 오줌싸개에 대한 '미신과 확신' 사이에서 오랫동안 수난을 당해야만 했을 것이다.
어떤 생각이나 상황이 우연히 맞아떨어지면 확신이 되고, 징크스가 되고, 미신이 되고, 신앙이 된다. 특히, 아무도 알 수 없었던 운명을 결정짓는 중대한 예측이 예언처럼 이루어지고 나면, 무조건 믿어야 된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말려도 안된다. 이 일을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