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오지 탐험이나 알려져 있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나는 전형적인 '안방 오지 탐험가'이다. 코로나 시기에 유행처럼 번졌던 '랜선 여행'을 이미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새삼스럽거나 참신한 방식은 아니었다. 안방에서 하는 오지 탐험에는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인 극도의 흥분 상태로 수풀을 헤치고 늪을 지나는 오지 탐험가가 되기보다는, 안방에 앉아서 자잘한 과자 부스러기를 들고서 졸지 않을 정도의 긴장을 유지한 채 화면을 응시하는 안방 오지 탐험가가 된 것은 순전히 나의 성격 탓이다.
첫째로, 나는 호기심이 많다. 호기심이 많은 조상의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발현된 것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궁금한 것은 못 참는다. 저 멀리 보이는 집 건너편 언덕 뒤가 궁금해서 "또 그기는 왜 가냐?"며 타박하는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서 꼭 갔다 와야 직성이 풀린다. "가 보니 아무것도 없고 그냥 산이더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먼 산을 바라볼 때마다 생기는 궁금함과 답답함이 해소가 된다.
외국 대학에서 공부할 때, 다양한 국적의 학과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고함소리가 들리고 소란스러웠다. 평소에는 조용한 대학 캠퍼스에서 무슨 일인가 싶어서 모두 그쪽으로 가 보았다.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대학 경비원 두 사람이 회색 후드티와 청바지를 입은 20대로 추정되는 젊은 남자를 땅바닥에 눕히고 팔을 비틀어 잡고는 무릎으로 등을 누르며 압박하고 있었다. 아래에 깔린 남자는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영화의 한 장면을 현실에서 보게 되었다.
몸이 압박을 당한 상태에서, 지방 사투리가 섞인 발음으로, 평소에는 내지 않을 법한 고음으로 악다구니를 쓰고 있어서 남자가 하는 소리를 전부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아는 해당 외국어 지식을 모두 동원하여 해석되는 중요한 부분은 "놔라!... 죽인다!"였다. 비슷한 음성 정보를 취득한 다양한 국적의 학과 동료들은 다들 겁을 먹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중 한 명이 가자고 나에게 재촉을 하였다. 하지만, 얼굴이 바닥에 짓눌린 채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던 남자와 눈이 마주치고는 겁을 먹었지만, 나는 혼자서 끝까지 남았다. 왜냐하면, 어떻게 끝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학과로 돌아왔을 때, 결과가 궁금했던 동료들이 몰려왔다. "어떻게 되었어?" 나는 희망봉을 발견하고 돌아온 탐험가처럼 목에 힘을 주며 쉬크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냥 수갑 채우고 자동차에 태워서 갔어." 나는 속으로 말했다. "겁쟁이들".
둘째로, 사실은 나는 겁이 많다. 겁이 많았던 조상님들이 수많은 위험을 피해 가면서 태초부터 생존해 왔을 것이니 내가 겁이 많은 것은 조상님 탓이다. 입증할 수 있는 다수의 사례가 있다.
사례 1. 어머니의 증언
"내가 두세 살 때, 강가에 빨래하러 가서, 큰 고무 다라이(대야)에 물을 반쯤 채워 놓고 앉혀 놓으면 빨래가 끝날 때까지 다라이 안에서 손으로 물을 첨벙거리며 놀았다. 위험한 다라이 밖으로는 절대로 나오지 않았다."
사례 2. 나의 기억
네다섯 살 때, 아버지께서 강에 물고기를 잡으러 갈 때 나를 데리고 간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다른 어른들과 강의 깊은 곳으로 가기 전에 나를 세워 놓고 설명을 했다. 가슴에서 젖꼭지 부분에 손을 대며 말씀하셨다. "물이 여기 위로 올라가면 죽는다. 알았제?" 그러고는 가셨다.
모래로 성을 쌓기도 했고, 강가로 몰려다니던 피라미 새끼들을 물속에서 몸으로 밀어 올려서 모래 웅덩이에 가두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혼자 놀았다. 강가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창의적인 놀이를 끝내고 무료한 나는 강의 안 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겁이 났지만 천천히 한 걸음씩 걸어서 들어갔다.
물이 무릎을 넘고, 허리를 넘고, 배꼽을 지나서, 젖꼭지에 도달할 때는 긴장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강물이 젖꼭지에 닿자마자 엄습하는 엄청난 두려움으로 몸을 돌려서 강가로 달려 나왔다. "와, 죽을 뻔했다." 그 후로 오랫동안 혼자서 놀았는데, 그래서, 목숨을 건 모험을 몇 번 더 시도해 보았다. 강물이 젖꼭지에 도달할 때마다 달려 나올 때의 긴장감이나 짜릿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목숨을 건 시도였으니까.
강물이 젖꼭지를 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생존했고 지금까지 살아 있다. 어머니의 증언과 나의 기억은 모두 교육을 받거나 훈련을 받기 이전이다. 따라서, 본능과 타고난 성격에 따른 것이다. 내가 겁이 많은 것은 그런 DNA를 전달해 준 조상님 탓임이 틀림없다.
초등학교 시절에, 부친과 친분 있는 분의 청탁 덕분으로 50권으로 된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 문학전집'이 우리 집에 배달되었다. 그때부터 방바닥에 누워서 책을 읽으며 세상을 상상하면서 살았다. 그중에서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던 책들이 대부분 '로빈 훗의 모험, 톰 소오여의 모험, 집 없는 아이, 십오소년 표류기,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와 같이 방랑을 하거나, 집이 없거나, 자의든 타의든 표류하거나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들이었다. 방바닥 방랑자의 기질이 이미 있었거나, 그때 훈련된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모험과 방랑을 하려면 그냥 떠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겁이 많은 나는 모험과 방랑은커녕 가출도 하지 못했다. 부모님이 정한 통금 시간을 칼 같이 지키면서. 그래서, 절대로 이루어질 것 같지 않는 '부모님의 허락'이 시도 조차 하지 않은 나의 모험과 방랑의 여정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나는 방바닥을 뒹굴며 그 책들을 읽으며 나의 모험과 방랑을 상상했다. 고아가 아닌 나의 신세를 한탄하며.
안방 오지 탐험가는 호기심은 많은데 겁도 많은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식이다. 무거운 촬영 장비를 들고, 모기에게 수백 번을 물려가며 귀한 영상을 찍어 온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에게는 무척 미안한 마음이지만, 겁내지 않고 호기심을 채우기에는 딱 좋다.
젖꼭지까지 차오르는 강물처럼, 동네 앞산 뒷산 너머 정도를 살펴보는 것이 나에게 딱 적당하다. 오지의 생태나 고립된 삶의 모습이 몹시도 궁금하지만, 실제로 그곳에 간다면 겁나고 긴장하고 두려워서 몸이 굳고 뇌가 멈추어서 아무 것도 보고 느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안방 오지 탐험가는 나의 천성에 맞는 천직이다.
다큐멘터리는 원시 아마존의 정글에서 살고 있는 소수 종족을 찾아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압도하는 자연 속에서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며 살고 있었다. 수시로 화면을 모자이크 처리해야 할 정도로 알몸으로 적당히 몸을 가리고 있었고, 나무로 엮은 단순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돌로 둥글게 만든 화구와 박물관에 두어도 의심하지 않을 낡은 항아리 같은 냄비 하나가 부엌살림의 전부였다.
작은 마을 주변에는 바나나 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그래서, 바나나가 주식이었다. 익었으면 그냥 먹었고, 덜 익었으면 구워서 먹었다. 간혹 사냥을 하고 다른 식물을 채집하기는 하였지만 바나나는 풍족했고 원주민들은 먹고사는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보면 늘 웃었다.
제작진과 친해진 원주민들은 통역을 통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이 깊은 부분이 있었다.
(여자들이 앉아서 마른 곡물을 갈고 있었다.)
제작진: 왜 (곡물을) 가는 거예요?
여인: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먹으려고
(여인이 예외적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여인: 당신 마을에서는 이런 것 안 먹어요?
제작진: 예. 우리는 이런 것 없어요.
여인: 그럼, 뭘 먹나? 바나나는 있어요?
제작진: 우리는 바나나 나무가 없어요.
여인: (놀라고 어이없어하면서) 바나나 나무가 없다고?
여인: (고개를 가로 지으며) 아니, 그럼 대체 뭐 먹고사나?
여인: (제작진을 보며 참 안되었다는 듯이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
제작진과 친해진 원주민 여인의 표정과 말투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정말 제작진을 걱정해 주고 있었다. 바나나 나무가 없다면 다른 먹거리가 없고 굶어야 하는데, 그런 바나나 나무도 없이 살아가야 하는 제작진들이 안타까워서 걱정해 주고 있었다. 동시에, 제작진을 보면서 짓는 불쌍한 연민의 표정 뒤에는 '바나나 나무를 가진' 자신들의 삶에 대한 감사함과 행복함이 묻어 나왔다.
이사를 갈 때마다 아내와 나는 다툰다.
아내: "이 것 좀 버립시다."
나: "이거 다 나중에 필요한 거야."
아내: "매번 봐도 일 년에 한 번도 안 쓰더구먼."
나: "일 년에 한 번 쓸 때 필요한 거야."
아내: "일 년에 한 번 쓰는 것이 왜 필요해?"
나: "그럼, 그때 필요할 때 어떻게 할 거야. 당신이 할 거야. 다 내가 해야 하는 거잖아"
이렇게 싸움은 시작되고, 이사 내내 냉랭한 분위기는 지속된다. 그러고는, 또다시 일 년에 한 번쯤은 쓸지도 모를 물건을 사고, 이사 때 "아, 이게 여기 있었네"라고 발굴할 물건을 또 구입한다.
많이 먹어서 나온 뱃살을 걱정하고, 다이어트를 한다고 힘들어하면서 짜증을 내면서 산다. "먹을 것이 없다." 빈틈없이 채워진 옷장을 열어 놓고 앞에 서서 말한다. "입을 옷이 없다." 끝없이 사고, 먹고, 마신다. 그러고도, "나는 아직도 목마르다."
내가 아마존 여인보다 더 감사하고 만족하고 살고 있는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