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적 환상, 시간적 환각'을 시작하며
검증하기 어렵기는 해도, 현생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로 지금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가장 똑똑할 것이라 짐작해 본다. '똑똑함'에 대한 정의에 따라서 여러 가지 반론이 제기될 수 있겠지만, 정보 통신 기술과 인터넷의 발달로 조상님들이 평생 동안 접촉하게 될 엄청난 양의 정보를 매일매일 접하면서 살고 있고, 관심만 있으면 이전 시대의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다양한 정보와 지식들에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들 모두가 매우 심할 정도로 똑똑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발달된 문명을 이루어 내었다는 자부심과 자기를 둘러싼 주변 환경과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 어느 시대보다 드높다고 할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에서 가장 상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에 걸맞은 지적 능력으로 세상을 통제하고 있고, 스스로를 지구의 주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스스로를 오류가 없는 완벽한 존재라고 여기며 살고 있다. 그야말로 잘난 인간들의 세상이다.
나 또한 보통의 인간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늘 무언가 탁월한 존재가 되기를 원했다. 초능력을 소망했으며, 나와 비슷한 류의 인간들을 대상으로 창작된 수많은 슈퍼히어로물을 탐닉하며 살았다. 아직 발현되지 않은 나의 초능력을 기대하며.
그리고, 수많은 동기부여와 간혹 이루어낸 성취가 주는 우월감에 도취되고 만족하며 살았다.
"나는 대단한 인간이다. 나는 잘 났다. 다른 사람보다도.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어느 날,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고개를 치켜들고 잘난척하고 있는 현생 인류의 대표자인 나 자신이 갑자기 눈꼴사나웠다. 산골의 자연 속에 살면서도 두꺼운 콘크리트 벽채를 올린 집을 짓고, 밖에서 침범할 수 없게 방범창을 달고, 방충망을 달고, 모든 구멍을 메우고, 날것의 자연과 구별하기 위해서 몇 미터의 포장된 마당을 만들고, 또, 그 마당 밖으로 침입을 막기 위한 높은 담장을 만들어야만 겨우 안심하고 생존할 수 있는 주제에 말이다. 그렇게 방어막을 첩첩이 쌓았음에도, 모기나 곤충의 은밀한 공격에 속수무책이고, 눈앞에서 앵앵거리는 파리 한 마리도 손으로 잡아채지 못하는 열등한 육신을 가진 생명체인 주제에 말이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야'라는 격려와 동기부여가 난무한다. 그래서, 다들 자기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핏대를 세우는 통에 세상은 중심도 없이 혼란스럽게 흩어져 있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기가 잡고 있는 중심이 가장 정확하다고 주장을 한다.
"네가 틀리고 내가 맞아."
"내가 본 것이 정확해."
도저히 설득이 되지 않는 답답한 자신에게 나는 질문하기로 했다.
"정말 네가 본 것이 정확해?"
"정말 네가 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해?"
"정말 네 생각이 맞아?"
'그 잘나고 위대한' 인간 육신의 부족함을 여실히 까발리기 위해서 택한 것이 '시각적 환상'이다. 우리가 보는 것과 실제로 존재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시각적 환상은, '내가 봤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은 틀림없다'라는 우리의 확신을 조롱할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차들은 오른쪽 길 사람들은 왼쪽 길 맘 놓고 길을 가자 새나라의 새거리... 냉냉 뚜뚜빵빵 따릉따릉 따르릉 사람 조심 차 조심 너도 나도 길 조심"이라는 동요를 부르면서 자랐다. 복도를 갈 때도 '좌측통행'을 지시받았다. 학습 효과에 진심이었던 선생님은 강조했다. "너희들 오른쪽으로 가면 차에 치여 죽는다. 알았나?" "예" 그리고, 우리는 다시 "차들은 오른쪽 길 사람들은 왼쪽 길 맘 놓고 길을 가자 새나라의 새거리"를 힘차게 합창했다. 평생 잊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살았다. 성인이 되어 자동차를 운전하기 시작하였을 때도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교훈을 다시 되새겼다. "운전은 오른쪽. 왼쪽으로 가면 죽는다."
영국 땅에 처음 내렸을 때 제일 처음 목격한 것이 모든 자동차들이 왼쪽 길로 달리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평생 동안 잊지 않으려고 애썼던 "왼쪽으로 운전하면 죽는다."라는 믿음은 사실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른쪽으로 운전하면 죽을 가능성이 높고, 왼쪽이 안전했다.
우리가 읽고 이해하며 살고 있는 믿음들이 어쩌면 우리가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 내는 환각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한계를 깨닫고 인정할 수 있으면, 자신의 능력이나 성취에 대해 과도하게 자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서로 공존하며 협력하는 겸허한 태도를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