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마니아] 스토리가 있는 구름 감상
내 나이는 스물다섯이며, 열일곱이며, 다섯 살이다. 생년월일을 기준으로 지구라는 행성에서 숨 쉬고 살아온 물리적인 시간의 양을 현생 인류의 시간 계산법으로 셈을 하자면 25년을 넘겼다. 인간이 숨을 쉰다는 것을 스스로 숨을 쉰다는 자가 호흡으로 정의한다면, 산소 호흡기가 강제로 나를 숨 쉬게 해 준 3개월 남짓을 빼면 25년에서 조금 모자랄 수도 있겠다.
나는 럭비공을 들고 상대 진영을 질주하여 역전 트라이를 성공시키는 꿈을 꾼다. 땀과 진흙으로 범벅이 된 친구들이 달려와서 에워싼다. 친구들이 나를 들어 헹가래를 친다. 한 번 두 번 세 번 하늘 높이 날았다가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내려오면서 아래를 보니 내가 갑자기 높은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손을 휘저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덜컥 겁이 나서 눈을 떴을 때 나를 둘러싼 낯선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누군지 몹시 궁금했지만 나는 눈만 반쯤 연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를 둘러싼 형체들이 말했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서로 소통했다. 나는 지금 외계인들에게 납치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내 몸에는 알 수 없는 여러 개의 관들이 연결되어 있다. 외계인이 인간의 신체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를 둘러싼 형체들은 SF 영화에서 보아 온 외계인처럼 생긴 외계인은 아니었다. 인간과 거의 흡사했다. 이런 외계인들은 사람들 무리 속에 끼어 있으면 구별해 내기가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졸음이 몰려와서 곯아떨어졌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엄마와 아빠와 형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엄마는 울면서 나의 이름을 불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는 울면서 자신이 누군지 알아보겠는지 물었다. 나는 분명히 기억할 수 있지만, 알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것을 생각을 하려니 또 잠이 왔다. 다시 일어났을 때 아무도 없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엄마와 아빠가 있으니 외계 행성에 끌려 온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또 잠이 왔다.
엄마가 감각이 없는 나의 손을 주무르며 말했다.
"그래, 아무 걱정하지 말고 빨리 회복해."
나는 알았다고 눈을 천천히 깜박였다.
"눈을 깜박였어요. 이제 말을 알아듣나 봐요."
엄마는 또 눈물을 흘렸다. 나는 엄마를 기쁘게 해 주려고 불 꺼진 병실의 어둠 속에서 눈을 깜박이는 연습을 했다. 내가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동안에 오그라드는 나의 손을 펴주며 엄마는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
"우리 아들이 오랫동안 잠을 잤는데도 아직도 잠이 모자라는지 자꾸만 자네."
꿈속에서 기억이 났다. 친구들과 함께 포르투갈 해변으로 여행을 왔던 그날을 기억해 냈다. 대학 입학시험을 마치고 해방된 기분으로 흥분해서 달려왔었다. 그리고, 내 기억의 필름이 끊어지고 내 인생이 달라진 그날 밤도 생각이 났다. 드디어 나는 비어 있었던 내 나이 열일곱의 기억을 살려 내었다.
휠체어에서 미끄러진 몸을 일으켜 세우기가 어려웠다. 경직된 왼손과 왼쪽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나는 도움을 청했다.
"조금만 잡아 주시면 저가 할 수 있습니다."
떨리는 오른손과 움직일 수 있는 오른쪽 발로 지탱을 하면 자세를 바로 잡을 수가 있다. 그동안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둠으로부터 눈을 뜨고, 입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벽에 기대어 설 수 있게 되었고, 언어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고, 보조기를 잡고 흔들거리며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몇 만년에 걸쳐 인류가 진화해 온 방식을 놀라운 속도로 습득하고 단축했다. 하지만, 나는 신생아가 태어나서 성장을 하는 속도는 따라잡지는 못했다. 아직 혼자서 걷지 못하고, 아직 혼자서 먹지 못한다. 다섯 살 아이가 나의 경쟁 상대다.
나는 내가 살던 시대까지, 인류가 타임머신을 개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안다. 만약에 타임머신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는 내 나이 열일곱의 그날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타임 패러독스든 무슨 이론이든 상관없이 나는 그날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내가 휠체어 위에 앉아 있다는 것은 타임머신이 없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타임머신이 개발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사용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스스로 걷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끊임없이 걷기를 시도할 것이며, 걷게 될 때까지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가 걷는 것은, 코마에서 눈을 뜨고, 호흡기 없이 숨을 쉬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고, 벽에 기대어 서 있을 수 있는 지금까지의 기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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