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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재 Jun 03. 2021

축지법을 아시나요?

이소룡 스님을 추억하며

영웅 이소룡


어린 시절 뒷산에 암자가 하나 있었고, 그곳에 중년의 스님이 한 분 계셨다. 종단이며 자격 조건이며 법령이 오늘날처럼 질서 정연하게 정돈되어 있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승복을 입고 삭발하였다는 당시의 스님 판별법의 범주에서 보면 분명히 스님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스님으로 불렀다. 까까머리 중학생들이었던 우리는 스님들을 부르는 법명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고 스님을 직접 부를 때는 그냥 '스님'이라고 불렀다. 그 스님을 찾으려면 암자에 가서 큰소리로 '스님'이라고 큰 소리로 부르면 되었다. '스님'이라고 불러도 상관이 없었던 이유는 그 암자에 스님 혼자만 기거하고 있어서 헷갈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나 집에서 낄낄거리며 그를 지칭할 때는 '스님'대신에 '이소룡'이라 불렀다. 당시 우리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영화에 나오는 이소룡처럼 쌍절곤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것이었는데, 모두들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학교 올 때 가방에 넣어가지고 와서 쉬는 시간이면 둘러 서서 자신의 기량을 뽐내곤 했다. 지금으로 보면 일진이라고 분류되어 압수될 쌍절곤이 그 당시 남자 중학생들에게는 필수품이었다. 이소룡처럼 괴성을 지르며 쌍절곤을 휘두르다가 마지막에 겨드랑이에 폼나게 끼우는 것이 하이라이트였는데, 많은 아이들이 쌍절곤의 반대쪽 끝이 돌아가서 뒤통수를 때리거나 마무리가 잘 되지 않아서 늘 고통스러워했고, 그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재미있다고 깔깔대는 것이 더 큰 즐거움이었다.


요렇게 간지 나게 마무리가 되어야 한다. 겨드랑이에 검은색 봉이 저렇게 안 잡히는 것이 문제.


그것이 알고 싶다


대박사건! 그때까지 존재를 몰랐던 뒷산 암자의 스님이 쌍절곤을 귀신같이 쓴다는 소문이 돌았다. '구라 치지 말라'는 타박에 '직접 눈으로 보았다'는 증언과 함께 논란이 확산되었고, 급기야 진실 검증단이 암자로 파견되었다. 다음 날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스님에게 혼나고 돌아왔다는 결과를 들었고, 스님의 쌍절곤 고수 논쟁은 한 명을 거짓말쟁이로 매장하는 선에서 정리되었다.


학교 갈 때 우리 집에 들러서 같이 걸어갔던 김용기라는 친구가 암자로 급파되었던 검증단 중의 하나였는데, 암자에 가니 돌을 둥글게 깎아서 만든 역기와 공터에 새끼줄을 감은 나무가 있는 것으로 보아 무술 단련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첩보를 전해 주었다. 그래서, 토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고 돌아와서 같이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총알보다 더 빨리 집으로 돌아온 토요일 오후에 용기와 함께 뒷산 암자로 달려갔다. 긴장하며 조심스레 둘러보았는데 아무도 없었다. 구석구석을 살펴보아도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긴장의 끈을 풀어놓은 우리는 수제 운동 기구들을 들고 만지며 장난을 치며 놀았다. 새끼줄을 감은 나무 기둥에 누구 발이 높이 올라가는지 발차기를 하며 다투고 있을 때 산 정상 쪽에서 몸집이 둥글둥글하고 얼굴은 더 동그란 스님 한 분이 땀을 뻘뻘 흘리며 갑자기 나타났다. 아~ 죽었다.


스님은 우리를 본체만체하며 옹달샘에서 졸졸 흐르는 물을 크게 담아 놓은 물통으로 가더니 물 한 바가지를 머리와 얼굴에 붓고는 "어, 시원하다." 하며 앉았다. 아, 죽지는 않을 모양이다. 


"몇 학년이고?" 

"1학년인데예." 

"여서 뭐하노?" 

"그냥 운동할라꼬예." 

"조막만한거뜰이." 

"헤헤헤."


흔적 기관


쌍절곤을 귀신처럼 쓰는 영화 같은 장면을 목격할 수는 없었지만 스님은 운동을 아주 열심히 했다. 똑같은 것을 해도 우리는 운동이지만 스님은 수련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여튼 스님은 엄청나게 수련하셨다. 그래서, 스님이 듣지 않을 때 우리끼리 부르던 별명이 '이소룡'이었다. 덕분에 용기와 나도 스님을 곁눈질하며 운동을 열심히 했다. 특히, 몸의 모든 감각과 근육을 느끼며 살아나게 해야 된다는 스님의 말에 아무 감각도 없는데 무슨 감각을 느껴보려고 용깨나 썼다. 스님 말씀을 정리하면, 


"신체의 많은 기능이 사용하지 않으면서 퇴화되었는데 활성화시키면 지금이라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사람도 귀를 움직일 수 있었는 데 사용하지 않으면서 퇴화되었고 사람들은 더 이상 귀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나도 처음에는 움직일 수 없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 


스님이 귀를 앞 뒤로 움직이는 시연을 해 보였는데 우리는 경악했다.


당장 집으로 돌아와서 거울을 보고 귀를 움직여보려고 하였으나 도저히 움직이지 않았고, 입을 벌리고 옆으로 돌리고 야단을 떨어도 귀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날부터 귀를 움직이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도에 이르는 화두를 받은 구도자처럼 매일매일 틈만 나면 귀를 움직여 보려고 거울 앞에서 용맹 정진하였다. "공부는 안 하고 또 쓸데없는 짓 하고 있제."라는 어머니의 질책을 뒤통수로 막아내며.


그게 뭐라고


몇 개월 동안 거울을 보고, 길을 걸으면서, 틈만 나면 귀에 신호를 보내려고 애를 썼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어느 날 어떻게 하다 보니 눈썹을 위로 밀어 올리고 두피 부분을 앞뒤로 움직이려고 하다 보니 두피가 움직이면서 귀 뒤쪽 피부가 당기면서 귀가 조금 움직이는 듯했다. 아, 긴 연습과 연구의 돌파구를 찾았다 싶었다. 점점 두피의 움직임을 크게 할 수 있었고 피부의 당김 정도에 따라서 귀가 뒤쪽으로 당겨지는 폭도 넓어졌다. 학교에 가면 같은 짓을 하고 있었던 용기를 쉬는 시간에 불러 놓고 "야, 봤지? 움직였지?" 이러면서 서로 자랑했다.


방금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아내에게 가서 물었다. 


"당신은 귀를 움직일 수 있어?"

(움직여 보려고 눈썹을 올리다가) "아니"

"그럼 내가 귀를 움직일 수 있는 거 알아?"

"그래?"

(내가 앞에서 귀를 앞 뒤로 움직이니) "아이 징그러워."

"나도 처음에는 못 움직였어."

"그럼 어떻게?"

"연습했지."

"그게 뭐라고"


그게 뭐라고. 그 후로도 용기와 나는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연습했고, 용기는 두피의 움직임을 극대화한 방식으로 귀를 움직일 수 있었고, 나는 두피를 움직이지 않고도 귀만 특정하여 움직일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하였다.ㅎㅎ 학년이 올라가고 학급이 달라져서 친구 용기와의 만남이 뜸해진 이후에는 잊어버리게 되었지만, 방금도 거울을 보고 확인해 보니 아직도 귀를 잘 움직일 수가 있다. 그게 뭐라고.



축지법을 아시나요?


우리 이소룡 스님은 한 번씩 산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내려오셨는데, 어디 다녀오셨냐고 물으면 '축지법'을 훈련하고 오셨다고 대답했다. 그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서, 무협지에나 나오는 '축지법'은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한다고 데굴데굴 구르며 웃곤 했다. 역시 이소룡은 이소룡이다.


어느 날 내가 물었다. 축지법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스님이 대답했다. 


"땅을 눈앞으로 평평하게 들어 올려 냅다 뛰면 된다."


그때는 이건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싶었다.


축지법이란 옛날부터 무협소설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평범하게 걸음을 걷는 듯한데 애써 달리는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빠르거나, 눈 깜짝할 사이에 이 쪽에서 저 쪽 장소로 이동하는 이 가공의 보법(步法)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왔다.


소위 축지법(縮地法)이란 말 그대로 '땅을 접는 법', 즉, 땅을 줄여 먼 거리를 가깝게 하는 술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A에서 B까지 거리가 100이라면, 땅을 주름지게 하여 겹쳐서 50 내지 20으로 만들어 장거리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하는 도술이다. 땅을 축소해서 한 걸음으로도 많은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해하기로는 서양에서 말하는 '순간 이동'에 해당하는 텔레포테이션(teleportation)과는 개념이 조금 다르고 '공간을 접는' 방법(the ways of folding space)으로 번역될 수 있겠다.


이소룡 스님의 축지법


이소룡 스님이 설명한 축지법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땅을 눈앞으로 평평하게 들어 올린다"는 개념은 '접힌 것을 더 넓게 편평하게 펼친다'는 뜻이 아니라,  현실 세계 속에 있는 물리적인 지형들, 즉, 울퉁불퉁하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구조를 평평하게 함으로써 거리를 줄인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복잡한 산악 지형에 그 굴곡을 따라 길을 내는 것이 아니라, 대신에 그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드는 것과 같이 '평평하게' 직선으로 만들어서 달리는 방법을 말했던 것이다. 이 또한 축지(縮地)다.


그리고, 다음 단계 "냅다 뛰면 된다"는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고 멍청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하지만, 축지법이 달성하고자 하는 '장거리를 빠르게 이동하고자 하는' 목적에 부합한다. 사뿐사뿐 걷는데도 날아가듯이 빠르다는 간지를 포기한다면, '냅다 뛰어서' 목표 지점까지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면 이 또한 축지법이라고 이소룡 스님은 이해한 것 같다. 역시 이소룡은 이소룡이다.


이소룡 스님의 가르침


뒷산 이소룡 스님이 우리에게 정좌하고 앉아서 어떤 것을 가르쳐 준 적도 없고, 가르쳐 준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다. 한 번씩 올라가면 인사하고 우리끼리 운동 기구를 만지거나 공터에서 놀다가 왔다. 간혹 우리가 던지는 엉뚱한 질문에 더 엉뚱한 대답을 주고받은 것이 전부였다. 덕분에, 귀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축지법의 개념에 대해서 잠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땡초라고 놀림받던 이소룡 스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내가 배운 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한 참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아무런 감각도 없었던 '그게 뭐라고' 귀를 움직여 보겠다는 황당한 시도를 통해서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이루어진다'는 흔해 빠진 감흥 없는 격문을 전율하며 체험하게 되었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될 때까지 노력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축지법을 익힌다고 해도 비행기보다 더 빠를 것 같지도 않고, 인터넷 등 통신의 발달로 축지법을 써서 굳이 힘들게 다른 장소로 갈 필요가 없어서 이소룡 스님이 던져 준 축지법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의 추억 중 하나일 뿐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냅다 뛰는' 축지법을 연마하며 땀을 줄줄 흘리던 이소룡 스님의 모습이 생각이 났고, '냅다 뛰는' 이유가 목적지에 짧은 시간 안에 도착하는 축지법에 합당하기 때문에 자신이 택한 방식이라는 이야기가 떠 올랐다. 이소룡 스님의 이야기를 나의 삶에 풀어내면, 나풀거리며 폼나게 걸어도 빨리 갈 수 있는 재능이나 환경을 타고나지 못했다면, 이소룡 스님의 축지법처럼 '열심히 냅다 뛴다면' 어려운 목표도 이룰 수도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땅을 줄여 먼 거리를 가깝게 하는 방법'이라는 축지법(縮地法)의 일반적인 설명에 따르면,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100의 거리를 50 내지 20으로 줄여야 한다. 하지만, 이소룡 스님의 축지법은 '땅을 눈앞으로 평평하게 들어 올리는' 방식을 통해서 거리를 줄이기는 하지만 이동 방법을 더 강조하고 있다. 이동 방식은 '냅다 뛰면 된다.' 폼나게 나풀거리며 천천히 걷지는 못하지만, 냅다 뛰어서 동시에 도착하면 두 경우 모두 똑같이 축지법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거리를 짧은 시간 안에 도착하는 둘 다 초능력자이다. 우리 이소룡 스님은 물리법칙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인식하고, 한계를 가진 인간으로서 축지법에 도달할 실천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고 있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뒷산 암자에 대해서는 그 존재 조차 잊어버리게 되었다. 우리 뒷산 이소룡 스님은 축지법에 통달하여 세상의 이 언덕과 저 언덕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삶의 피안과 차안을 치닫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또 삭발한 머리 윗부분이 유달리 튀어나왔는데, "몸속의 기가 모여서 올라와서 그렇다"라고 했다. 두개골을 치받아 올리던 몸속의 기가 탱천 하여 몸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경지에 도달하였는지 모르겠다.



영웅이 되는 길


영웅을 남다른 용기와 재능, 지혜로 보통 사람들이 해내지 못하는 것을 해내는 비범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우리 이소룡 스님은 까까머리 중학생에게 영웅이었다. 국가와 민족을 구하고 세상을 바꾼다는 거시적인 항목을 포함시키면 이소룡 스님은 영웅과 거리가 멀었다. 


어떤 인물이 영웅이냐는 기준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주어진 현실을 뛰어넘는 모험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 앞에 놓여진 도전을 기꺼이 받아 들이고, 앞을 가로막고 있는 위압적인 난관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찾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어내는 과정을 영웅의 여정이라고 한다면 세상 귀퉁이 작은 나라 포르투갈에 한 때의 영광을 가져왔던 대항해시대는 영웅들의 여정이었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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