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te is horse. (라떼는 말이다.)
한 때 해외 아미들이 '라테가 뭐라고?', '라떼가 말이라고?', '어떤 종류의 라테를 말하는 거야?' 라며 단체로 멘붕에 빠진 적이 있다. 유튜브로 방송된 방탄소년단의 영상에 'Latte is horse..'라고 자막이 달리자 해외 팬들이 보인 반응이다. 해당 밈은 오로지 국내에서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사태는 한국 팬들이 '라떼는 말이야' 밈을 자세히 해석해 주면서 마무리되었다.
어느 날 식탁에서 아들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몇 번 하셨는데, 마치 처음 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셔요. 하하..." 그리고 다른 가족들도 곁눈질하며 따라서 웃었다. 동의와 재청의 의미로. 그런데 나는 기억이 안 났다. 전에 이야기를 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게나 여러 번 이야기를 했다고? 깜짝 놀랐다. 그 무렵에 지인들이 몇 명씩 모여서 커피나 와인을 앞에 놓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비슷한 분위기의 모임이 많이 있었다. 모임의 구성원이 모두 다른 사람일 때도 있지만 여러 모임에 겹쳐서 만나는 몇몇 사람들도 있었다. 살아가는 모양이 비슷하고 가벼운 친목 모임이라 대화의 주제도 비슷했다. 그렇다면 모임 때마다 동일한 이야기를 나만의 재미있는 경험으로 썰을 풀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러 모임에 같이 참석했던 지인은 웃어주면서도 속으로 아들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저분은 여기서도 같은 이야기를 또 하고 계시네.'
대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생기부'(생활기록부)에서 '종생부'(종합 생활기록부)로 다시 '생기부'로 바뀌는 과정만큼이나 고교 내신 성적의 중요도와 평가 방식도 변화를 겪어 왔는데, 평가 방식이 갑자기 절대 평가(수우미양가를 기준 점수를 기준으로 부여. 점수만 높으면 모두 수를 받을 수 있음)에서 상대 평가(수우미양가의 부여 비율이 정해져 있음. 따라서, 반에서 상대적인 비율에 따라 몇 명만 수를 받을 수 있음)로 바뀐 시절이 있었다.
한 학년이 10개 학급으로 구성된 도시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이수 단위(주당 몇 시간이 이수 단위다)가 높은 과목의 경우에는 과목당 3-4명의 교사가 한 학년을 가르쳐야 했는데, 상대 평가 방식으로 바뀌면서 공동으로 출제하는 중간/기말고사에서 어떤 반에서는 배웠는데 어떤 반에서는 배우지 않은 내용이 출제가 되면 골치 아픈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협의된 방식이, 이전에 과목 교사 2명이 전반(1-5반)을, 나머지 2명이 후반(6-10반)을 담당하던 방식을 바꾸어서 담당 과목 교사 전부가 1반부터 10반까지 전체 학년을 수업하기로 결정하였다.
예를 들어, 이수 단위가 4라면 해당 과목의 학년당 주당 수업 시수는 4 단위 x 10반 = 40시간이고, 교사의 수업 시수는 이전에는 2명 x 2시간 x 5반 = 20, 똑같이 2 x 2 x 5 = 20 하여 총 40이었던 것이 이제는 4명 x 1시간 x 10반 = 40시간이 된 것이다.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못 바꾸는' 우리나라에서, 출신 대학을 결정짓는 고교 내신은 학생들 뿐만 아니라 교사에게도 상당한 압박이기 때문에 상대평가라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따른 대응 방식이었다.
전체 반에 담당 과목 교사 모두가 수업을 하게 되면 가르치지 않은 내용이 시험에 나오는 문제는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각 학급의 분위기도 다르고 실제 수업 상황이 다른데도 모든 반에 똑같이 수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전이되었고, 똑같은 수업 내용을 열 번을 되풀이하게 되었다. 다섯 번째 반을 넘기면 특별히 노력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교과서 본문은 외워졌고, 여섯 번째 반부터는 교과서 전체를 줄줄 외우면서 수업을 했다. 그 당시 학생들에게 나는 '영어 교과서 본문을 줄줄 외우는 우와~ 인간도 아닌' 반신반인의 추앙받는 존재였다. ㅎㅎ
나름대로 수업의 흥미를 높인다고 양념처럼 본문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수업 중간중간에 넣기도 했는데, 콘서트처럼 반응이 좋으면 예정에 없던 앙코르를 여러 번 하는 것처럼 (수업하기 싫은 학생들의 격한 반응에 속은 것이었겠지만) 한껏 고무되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반은 꼭 수업 진도가 늦었다. 그래서, 모든 반이 비슷하게 진도가 나갈 수 있도록 가능한 동일한 내용을 비슷한 시간 안에 전달하려고 노력하였다. 심지어 농담까지도.
문제는 10개 반에 수업을 하다 보면 이 반이 저 반 같고 해서 재미있는 말장난이나 농담을 이전에 했던 반에 또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한 마디도 안 틀리고 똑같은 내용을 똑같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예의 바르고 공손한 학급은 처음 듣는 듯이 모른척해 주어서 농담을 되풀이한 줄 모르고 넘어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꼭 '에이... 세엠~ 지난번에 이야기하셨잖아욥!'이라고 지적하는 쓸데없이 정직한 학급들도 있었다. 그래서, 농담이 끝나면 '1학년 1반, 1학년 9반, 1학년 3반...' 이렇게 교과서 귀퉁이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인 듯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똑같은 농담을 복사하듯 같은 반에서 되풀이하는 순간, 바지에 손을 찔러 넣고 한 껏 치켜올린 턱으로 교과서 전문을 도도하게 외워가면서 교실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며 하늘을 날던 신적인 존재는 교실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기 때문이다.
꼰대가 되어가는 특징 중에 하나가 옛날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과거의 경험은 다른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독특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을 통해서 어떤 심오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고, 그래서, 이렇게 친절하고 자상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라고 되풀이하고 조언하려고 한다. 그기 머시라꼬. 내가 자꾸 그런다. 이렇게 꼰대가 되어가나 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오늘도 마치 처음 하는 이야기처럼 '나 때는 말이야'를 신나게 이야기한다. 전지적 꼰대 시점으로. 어쩔 수 없이. 그기 머시라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