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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재 Jan 27. 2022

미치면 미치리라

펀쿨섹좌


'미치면 미치리라.' 이 뭐 또 펀쿨섹좌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첫 번째 펀쿨섹좌 풀 뜯어먹는 소리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편이다.)


펀쿨섹좌는 고이즈미 신타로 일본 환경 대신의 발언에서 유래되었는데, "기후변화와 같은 큰 문제에 대해서는 Fun하고 Cool하고 Sexy하게 해야 한다"는 그의 발언에 대해 무슨 뜻인지 기자가 추가 설명을 요구했을 때 "그게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 자체가 Sexy하지 않습니다."라고 뜬구름 잡는 소리로 대답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를 소리를 진지하게 하는 그를 놓고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 밈이 되어 번져 나갔는데, 해당 발언의 앞글자 '펀쿨섹'과 '본좌'를 결합하여 '펀쿨섹좌'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한마디로 '말인지 막걸리인지 터무니없는 x소리를 내뱉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순환 논법(동어반복)과 논점 일탈(동문서답)을 비롯한 이상한 화법을 구사하며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추상적인 답변으로 질문을 적당히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그 정도가 과해서 듣는 사람을 어이없게 만들 정도였다. "경기가 좋아지면 반드시 불경기에서 탈출할 수 있다", "반성하고 있지만 좀처럼 반성이 전달되고 있지 않은 것 그런 자신에게도 반성하고자 합니다."는 발언과 같이 한국과 일본에서도 그의 화법을 따라 하며 조롱하는 것이 유행하기도 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처음 한 키스는 첫 키스였죠.", "바뀌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감염되지 않으면 병이 옮지 않습니다." 등 수많은 밈으로 탄생하였다. 살펴보면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펀쿨섹좌의 테크닉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도 명언을 남겼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는 부부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ㅎㅎ


'펀펀'(fun pun)


영어로는 다의어,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말장난을 '펀(pun)'이라고 한다. Fun과 발음이 비슷한 pun은, 비슷하거나 같은 발음이 나지만 뜻은 전혀 다른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언어유희’로 fun pun은 '재미있는(fun) 말장난(pun)'으로 번역될 수 있겠다. 영어 [f]와 [p] 발음에 대응하는 한글이 [ㅍ] 하나로 발음되는 우리말 표기가 더 재미있다. 'fun pun' 보다는 '펀펀'이. 의미의 추적에 어려움이 발생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경상도 사투리 능력 평가


내가 생각하기에 '펀펀'의 최고 필살기는 아래 경상도 사투리가 되겠다. 다음 경상도 사투리 수행 능력 평가에 도전해 보자.


1. 가가 가가?

2. 가가 가가가?

3. 가가가 가가

4. 가가 가가가

5. 가! 가가. 가가!


문제를 풀었다면 아래 정답과 비교해 보자.


출처: https://namu.wiki/


위 그림으로 소리를 상상하기가 어렵다면 아래 링크에서 경상도 사투리 원어민의 발음을 들어 보자.

https://youtu.be/RDLeaAxV4M0


기출 변형으로는


가가 가가 가가? (그 아이가 성이 가씨인 바로 그 아이냐?),
가가 가가, 가가 가가? (그 아이(a)가 그 아이(c)냐, 그 아이(b)가 그 아이(c)냐?) 등이 있다.


재현이 어려우면 주위에 있는 경상도 사투리 기능 보유자를 찾아보도록 하자.


미치면 미치리라


조선 초기에 문신이자 서예가인 최흥효라는 선비가 있었다. 글씨에 미쳐서 중국의 명필 왕희지의 글씨를 수만 번 베껴 썼는데, 최흥효가 과거를 보러 갔다가 답안지에 자신이 쓴 글씨 하나가 이전에 미치도록 따라 쓰려고 노력했던 왕희지의 글씨와 똑같이 써졌다. 평소에 수백 수천 번을 연습했어도 쓰지 못했던 글씨가 써지자 아까워서 차마 답안지를 제출하지 못하고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이 걸린 중요한 과거시험장에서 겨우 잘 써진 글씨 하나 때문에 과거급제의 꿈마저 까맣게 잊고 말았던 것이다. 그의 행동은 미친 짓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 일화에서 '불광불급'이라는 사자성어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은 아닐 不불, 미치광이 狂광, 미칠 及급으로 이루어진 사자성어로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 미친 사람처럼 그 일에 미쳐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중에 예문관 직제학을 지낸 최흥효는 자신의 글씨에 인생을 걸었을 만큼 집요했고, 결국 초서로 일가를 이루어 15세기 전반 조선에서 초서에 관한 한 독보적이었다고 한다.


덕후


최근에 '덕후'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원래 일본어 '오타쿠'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인데, ‘오타쿠’의 한국식 발음인 ‘오덕후’를 줄여서 ‘덕후’가 됐다. 오타쿠라는 말의 기원은 일본어에서 ‘당신’ 또는 ‘댁’을 의미하는 2인칭 대명사 오타쿠(おたく)다. 일본에서 만화와 게임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동호회에서 서로를 존칭으로 당신(오타쿠)이라고 부르다가 그것이 명사화됐고, 그 말이 상징적으로 특정 부류를 칭하는 이름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초기에 일본에서 사용되었던 ‘오타쿠’는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좋아하는 만화나 게임에 빠져서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한국의 ‘덕후’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흠뻑 빠져서 몰두하는 사람을 뜻하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덕후와 마니아


덕후와 대비되는 영어 어원의 단어에 '마니아(mania)'가 있다. ‘한 분야에 심취한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덕후와 마니아는 동일한 범주의 사람을 포괄한다. 하지만, '덕후'로 분류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덕후와 마니아는 일반적으로 ‘분야’와 ‘강도’의 관점에서 구분된다고 이야기한다. 덕후는 마니아에 비해 관심사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고 파헤치며, 그것을 인생에서 최고의 가치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마니아가 취미에 깊이 빠진다 해도 어디까지나 여가를 즐기기 위한 개념이다. 하지만 덕후는 인생을 위한 취미를 넘어, 취미를 위한 인생이 된다는 것이다.


미치겠네


펀쿨섹좌의 서술 방식대로 말하자면, '미치지 못해서 미칠 것이 없어서 미치겠다'. '미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를 책상에 붙여 놓고 다양한 것들에 미치고 빠져서 살아온 시절이 있었다. 한 동안 미쳐있다가 시간이 흐른 후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보면 나름대로 미쳐있던 분야에 대해서 반쯤은 전문가가 되어 있었고, 이러한 것들이 나의 삶의 경쟁력이었고 인생을 구성해 온 레고 블록 같은 것들이었다.


삶의 어느 순간부터 나는 너무 정신이 멀쩡했고 정해진 규칙대로 반듯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기 있는 향수를 뿌리기 시작했고, 나의 냄새를 감추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나는 사교성과 사회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나 다시 돌아갈래


나는 다시 미치기로 했다. 머리에 꽃을 꼽고, 봄날 미친X 널 뛰듯이, 시도 때도 없이 미친X 삽질하듯 그렇게 살기로 했다. 더 이상 미지근하게 살기에 지쳤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그에 맞추어 살기에 지쳤다. 냄새가 고약하다고 사람들이 코를 막아도 그것이 내 삶의 향기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나 다시 돌아갈래!


안도현이 나에게 물었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데 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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