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
50대 후반을 살아가는 오늘도 아직 한 번씩 '내가 좋아하는 일은 찾아라'는 자기 계발서의 단골 멘트에 동기 부여되어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도 하고 애써 다시 찾아보기도 한다. 100세 시대라는데 (그때까지 생존 가능하리라 기대하지 않지만) 저렴하게 잡아서 80까지 살 수 있다고 가정해도 20년이 더 남았다. 그래서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은 중요하고 의미 있다.
10대부터 '내가 좋아하는 가슴 뛰는 일은 무엇인가?'는 학교 공책의 뒷장 안쪽이나, 성년이 된 뒤에는 매년 구입했던 다이어리에 적혀 있었던 필수 질문이었다. 아직도 한 번씩 이런 질문을 생각해 보고 있다면 지난 40년 동안 해답을 찾지 못했다는 결론이다. 나름대로 좋아하는 일만 선택해서 살았는데도 말이다.
DWYL (Do What You Love): 좋아하는 일을 하라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스티브 잡스가 한 유명한 졸업식 연설 중의 하나로 언급되는 구절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이다. 영어로 줄이면 DWYL(Do What You Love)가 되겠다. 오래전에 우리 중학교 국어 선생님도 하신 말씀이지만, 워낙 영향력이 있는 잡스형의 말이라 제법 나이가 들었던 나에게도 그리고 세상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잡스는 연설에서 '아직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으면 타협하지 말고 끝까지 찾아라'라고 요청했다.
한편으로, 내가 세상에서 큰 성취를 이루지 못한 것은,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찾아서 지속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 자각과 후회를 불러오기도 했다. 지금까지 나의 삶의 방식과 선택은, 넷스케이프를 설립하여 인터넷 붐의 신기원을 열었던 짐 클라크의 '뉴뉴씽(New New Thing)'류의 새롭고 새롭고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었다. 그래서 봄날 미친 X 널뛰듯이 이 쪽 저 쪽을 오가며 날뛰다 보니 세월이 가버렸다. 새로운 것을 조금 더 빨리 아는 것에 흥분하였을 뿐 이를 토대로 창의적이고 실행 가능한 새로운 것을 생성하고 생산하는 능력이 부족한 나의 부족함 때문이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조언은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는 반론과 '어떤 일이든 할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청년실업의 현상황을 들어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서기 3000년에도 누구에게나 해 줄 수 있는 폼나는 조언임에는 틀림없다.
오늘 만난 깨달음 하나
이 사진의 출처를 짐작해 보실 수 있겠는가? 미술에 조예가 깊으신 분들은 현대미술관에 있는 '피터팬 신드롬'이나 '프로이트를 추억하며'라는 '낯설게 하기'의 전형적인 현대 미술 작품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고, 유아용품 업계와 관련이 있는 분들은 제품의 다양한 모양과 모델에 관심을 갖고 어디 회사의 컬렉션인지 궁금해하실 것이다.
이 사진이 오늘 아침 해안 도로 산책을 무척 즐겁게 해 준 장면이다.
이른 아침에 도로 청소를 하는 분의 첨단 장비되겠다. 휴식 시간인지, 도구를 두고 잠시 다른 일을 하고 있는지 주인공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 분이 어떤 태도로 일을 할지, 어떻게 하루를 살아갈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도로를 청소하는 청소부들에게 길에 떨어져 있는 것들은 모두 쓰레기다. 쓰레기는 치우고 버려야 하고 청소부에게 귀찮은 일거리일 뿐이다. 그래서 누군가 실수로 떨어뜨린 물건조차도 청소부에게는 성가신 노동이다. 그래서, '짜증 나게 누가 이런 것을 떨어뜨리고 갔나' 반응하며 신경질적으로 쓸어 담아서 버릴 것이다. 그런데, 이 청소 수레의 주인은 어딘가 장식되었다 버려진 인조 장미꽃을 쓰레기로 취급하지 않고 예쁜 꽃으로 보았고, 연인이 주고받음 직한 장미꽃 한 송이는 아직도 사랑의 여운이 담긴 듯이 수줍게 담아 두었다.
가장 압권인 것은, 노리개 젖꼭지, 공갈 젖꼭지 또는 쪽쪽이로 다양하게 불리는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오브제의 컬렉션이다. 덕분에 밤잠을 푹 잘 수 있었던 아기 부모에게 온 가정의 평화, 그 가정의 평화가 지구의 평화의 초석이 되는 쪽쪽이. 그 미래 세계의 희망인 아기들의 쪽쪽이가 청소부의 쓰레기 통에 주렁주렁 붙어있다.
세계적인 분쟁 지역에 두면 '인종 청소'라는 타이틀로 끔찍한 실상을 고발하는 르포 사진이 될 수 있고,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는 있을까?'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보면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사진이 될 수 있겠다. ㅎㅎ 지나친 상상과 의미 부여는 그만하자.
LWYD (Love What You Do):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라
이른 아침에 길을 쓸 때 떨어진 장미꽃을 발견하고는 '누구는 멋진 옷을 입고 꽃을 주고받으며 고급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세상 참 안 고르다'라고 신경질적으로 싹 쓸어서 검은 폐기용 쓰레기봉투에 던져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분은 '아 장미꽃이 참 예쁘네' 이러면서 손으로 조심스럽게 주웠을 것이다. 그리고 청소 수레의 어디에 꽂으면 예쁠지 이리저리 살펴보았을 것이다.
떨어진 쪽쪽이를 발견할 때마다 귀찮은 쓰레기가 아니라 늘 입에 물고 잠이 들었던 아기가 밤새 쉽게 잠들지 못하고 깨어서 울지나 않았을까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다시 찾으러 오지도 않을 것이고, 찾아도 더럽다고 쓰지도 않을 용도 폐기된 쪽쪽이지만 쓰레기통 옆에 하나씩 걸어두게 되었을 것이다. '아이고, 여기도 있네' 이렇게 쌓여서 세상에 없는 자기만의 컬렉션이 되고 자랑스러운 데코레이션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멋진 청소 수레를 갖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끼고 신나게 도로를 쓸어 나갈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졸업연설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라'에 덧붙인 말이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라', LWYD(Love What You Do)이다. 뭐,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 일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못해도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가 어려운 오늘을 대견하게 견뎌내고, 별 것 없지만 우리 삶을 멋있게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만난 청소 수레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하는 일이 나 보다 더 재미있잖아', '네가 하는 일이 나보다 더 폼 나잖아'. 그럼 충분히 좋아할 만하잖아. 세상 속에서 손해와 이익을 셈하는 법을 잘 학습하고 터득한 나는 너무 안전하게 계획하고 살아가고 있다. 손해날 짓은, 죽을 짓은 절대로 안 하고.
그때 그 바닷가에서는
포르투갈의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사람들에게 주어진 선택은 어떠하였을까? DWYL(좋아하는 일을 하라)와 LWYD(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라) 중 어떤 선택의 비중이 더 높았을까? 그 당시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을 하기에는 직업 선택의 폭이 좁았을 것이라 주어진 일을 좋아하는 것이 최선의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주어진 일을 좋아하는 것 만으로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 수평선 너머로 나아가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미치도록 또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도 좋아하는 일이었으리라. 결과가 기대와 달리 '그리 아니 될 지어도', 그들이 믿는 신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었던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그 무엇이 포르투갈 사람들로 하여금 포악하게 넘실대는 대서양의 파도를 넘고 넘어 죽고 또 죽어도 앞으로 나아가게 했을까? 되풀이되는 삶과 죽음의 일상 속에서 맺힌 마음의 응어리는 어떠했을까? 오늘도 그 바닷가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