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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재 Oct 23. 2021

불이 되어 바람을 맞이하라

나에게 왜 대항해시대가 없었을까?

불이 되어 바람을 맞이하라


"바람은 촛불 하나를 꺼뜨리지만 모닥불은 살린다. 무작위성, 불확실성, 카오스도 마찬가지다. 나는 당신이 이런 것들을 피하지 않고 활용하기를 원한다. 불이 되어 바람을 맞이하라."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


'블랙 스완' 개념의 창시자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책 '안티프래질(Antifragile)'을 읽고 메모했던 인상적인 구절이다. 나의 삶을 뒤돌아 보면 나는 모닥불이기보다는 촛불이었다. 그래서 바람 앞에서 항상 위태로웠으며 좌절하고 꺼지기가 일수였다. 혼돈과 불확실성 속에서 전전긍긍했고 불안해했다. 이 정도가 내 능력의 한계인가 내 인생의 한계 인가하며 오랫동안 스스로를 탓하며 살았다. 


나는 왜 촛불이었나


나는 시골에서 태어났고, 장남이었으며 착했다. 다시 말해서, 눈에 보이는 작은 세상이 전부인 자극 제로인 환경에서, 첫째 아이라 자녀를 어떻게 키우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한 데이터를 '그렇게 했어야 했구나'를 통해 축적해가는 부모님 슬하에서, 자기주장이 없이 고분고분시키는 대로 자랐다는 뜻이다. 유신과 독재 체제에 순종적인 새 나라의 어린이의 전형이었으며, 또한 공손하고 반듯하였다. 아무 위치에나 놓아도 맞추어지는 테트리스 블록처럼.


그래서, 나는 큰 불을 지피는 모닥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모닥불이 되겠다는 꿈을 꾼 적이 없다. 대학을 진학할 때 잠시 출신 지방을 떠나 서울로 가볼까 생각을 하였지만 겁나고 두려워서 부모님이 권하는 '안정된 삶'의 방식대로 그곳에 눌러앉았다. 주어진 작은 공간을 밝히는 촛불만으로 충분한 삶이었다. 그래서, 모닥불은 나의 삶이 아니었다.


나는 왜 촛불로만 있지 못했나


'차라리 몰랐더라면', '차라리 이해할 수 없었더라면'이 거친 바람에 꺼진 어둠 속에서 내뱉은 나의 넋두리였다. 나는 멍청하지도 똑똑하지도 않다. 이것이 내 삶에서 항상 문제였다. 어떤 상황이나 어떤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멍청하게 편하게 살아갈 수도 있을지 몰랐고, 문제를 알고 이해할 수 있어서 그 문제와 상황을 돌파하고 개선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하였다면 바람 속에서 큰 불을 지피는 모닥불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앞서서 문제를 풀고 정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것이 내 삶의 딜레마이다. 


나는 촛불이었지만 바람에게 도전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매번 깨지고 꺼졌다. '아니 내 머리로 알게 되고 이해되는 것을 어떡해? 이미 아는 것을 모를 수는 없잖아. 나도 모르고 싶다. 그래서 멍청하고 편하게 살고 싶다.' 그게 내 태생이고 운명이다. 그래서, 가족을 이끌고 유럽으로 날아왔고, 바람에 밀려 이 땅끝으로 와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불이 되어 바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어느덧 50대 후반이 되었다. 한 때 386이 486으로, 이제 586이 되어 86세대의 선두로 베이비붐 세대의 막내가 되었다. 세상은 우리를 저쪽 끝으로 심하게 밀어붙이면서, 100세 세대니 굳건하게 가운데 서 있으라고 한다. 나는 눈치껏 구석으로 가서 조용히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조금 뻘쭘하지만 가운데 그냥 서 있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오랫동안 서 있었다. 솔직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출력이 많이 떨어졌다. 오래된 오디오처럼 어떤 때는 제법 길들여진 고운 소리를 내다가 간간이 한쪽 스피커의 소리가 붙었다 떨어졌다가 한다. 낡은 앰프의 문제인지 아니면 스피커 쪽의 문제인지 확인하기가 어렵고, 온전한 소리를 위해서라면 통째로 갈아야 하는 심신의 상태다. 


무기력과 무의미의 연속선상에서 자학과 자아분열의 과열을 막아내기 위해서 '작은 촛불이 지금까지 꺼지지 않고 온 것만 해도 대단한 것 아니니?'라며 다양한 자기 합리화 기법을 동원해서 평상심을 유지하며 아직까지 잘 살아남아 있다.


하지만, 숨 쉬며 오늘을 사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며 유령처럼 소리 없이 흔적 없이 살고 있는 현재의 삶에 애써 회피해 온 본질적인 질문을 대면하게 되었다. 우리 동네 중앙 광장에 앉아있는 한 인물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사니?" 


화가 난 나는 핏대를 올리며 달려들었다.


"그렇게 살아서 당신의 삶에 뭐가 달라졌는데?" 

"그런 것들이 지금 당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감추었던 치부가 드러나자 안하무인으로 오히려 큰소리치며 전세를 역전시키려는 정치인처럼 삿대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항해왕 헨리


그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 보다 더 진취적이고 투쟁적이고 강한 의지로 부지런하게 살아왔어야 했던 것이 수저 없이 태어 난 나의 환경과 삶이 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적당히 노력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회피하며 살아왔다. 그는 금수저로 태어나서 안락한 환경 속에서 편안한 삶을 즐길 수 있었음에도 못 말리게 진취적이었고 대책 없는 모험심으로 가득 차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찾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실천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인정! 나를 마구 두들겨 패도 좋아."


그를 만날 때마다 두들겨 맞으면서도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내가 매달린 몇 안 되는 사람이다. 나에게 다시 불이 되어 바람을 맞이하라고 속삭인 사람이다. 인판데 동 엔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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