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빠의 발전이 곧 가족의 발전이다."
이런 무리한 소리를 구호로 내 세우며 가족을 뒷전으로 미루어둔 채 별 것도 아닌 일을 나라를 구하는 일처럼 설치고 돌아다닌 때가 있었다. 아빠가 오면 바로 외출할 것이라고 외출복을 차려 입고 신발을 신은 채 기다리다가 지쳐서 신발을 신은 몸의 반은 현관에 두고 나머지 반은 거실 쪽으로 드러누운 채 "아빠는 아직 왜 안 오셔요?"라고 불평했던 아들의 기억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큰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가족보다는 바깥일을 우선하였고, 가족보다는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가족은 앞으로 언제든지 함께할 시간이 많지만, 지금 해야 할 일은, 지금 만나야 할 사람은 이번이 아니면 다시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우선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친지들과의 휴가 모임이 있을 때면, 내가 일이 있어서 우리 가족만 하루 늦게 가거나, 일단 다른 친지의 자동차에 아이들만 먼저 보내거나, 그리고, 나의 일정 때문에 다른 가족보다 항상 서둘러 먼저 떠나오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늘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많은 일에 둘러 싸여 있었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관계가 좋고 칭찬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애썼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은 없었다. 가족들의 불평을 마주할 때마다 구호처럼 외쳤다.
‘아빠의 발전은 곧 가족의 발전이다.’
‘아빠가 이렇게 바쁘게 사는 것도 모두 가족을 위한 것이다.’
이해해 줘야지.
한 번씩 둘러앉아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국에서 자신들이 어릴 때 아빠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내는 가족을 내팽개친 채 혼자서 신나게 살았던 나의 한국 시절에 대한 성토가 시작된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기억을 못 하는 거야.”
나는 잽싸게 얼버무리며 황급히 자리를 피한다. 사실, 나도 아이들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 아이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 자는 모습을 보고 출근을 했고,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었을 때 퇴근해서 아이들의 자는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영국으로 왔을 때 한국에서는 주 5일제가 시행되기 전이라 토요일은 오전 근무를 했다. 영국에 와서도 한국 사람의 근면 성실함으로 한국과 같이 토요일에도 연구실에 나갔다. 당연히 대학은 문을 닫았고, 학과에도 나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쉬는 토요일에도 혼자서 열심히 사는 듯한 뿌듯함으로 텅 빈 대학 건물을 활기차게 걸어 다녔고, 붐비던 학과 사무실의 프린터를 홀로 마음껏 사용하는 재미가 있었다. 겨울이 되면서 난방이 끊어진 토요일에 연구실에 홀로 앉아 있자니 겨울 기온이 가혹하지 않은 잉글랜드 지역이라도 정오가 지나면 서서히 한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미련한 것이 4개월쯤 지나서야 아무도 나오지 않는 토요일에 혼자서 무슨 청승인가 느끼기 시작했다.
아빠가 4개월 동안 영국에서도 한국처럼 살아가는 동안, 온전히 비어있는 토요일에도 아이들은 집에서 그냥 이것저것 재밋거리를 찾으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빠를 기다리며. 한국처럼 달려가서 과자나 아이스크림이라도 살 수 있는 아파트 단지 내 슈퍼도 없고, 간단한 조립 완구라도 살 수 있는 문방구도 없고, 영어도 못하니 꼼짝없이 하루 종일 잠옷 차림으로 집에만 있었다. 9시간의 시차가 있는 한국에서 가장 먼 곳까지 와서 살고 있음에도 나는 여전히 한국처럼 살고 있었다.
해외 생활이 더 화려한 한국 생활을 위한 일시적인 시간 활용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고 현지인들의 삶의 방식에 관심을 갖고 이해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를 세상의 중심에 두는 고집을 버릴 때 비로소 새로운 변화의 씨앗이 자랄 수 있었다.
특히, 아내가 생명을 위협받는 질병을 선고받았을 때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아내는 아이들을 키워내고, 시집 장가보내고, 백발의 노인이 될 때까지 지금 챙기지 않아도 충분할 만큼 지겹도록 나와 함께 오래오래 같이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족들이 언제까지나 내가 원하는 충분한 시간만큼 나의 곁에 있어 줄 것으로 생각하고 살았는데, '가족들도 갑자기 나의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깨달음은 가족에 대한 나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꾸는 인식의 대전환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나, 외부의 일이나, 가족이나 모두 지금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잖아. 지금 나누는 가족과의 시간도, 가족과의 추억도 우리가 같이 살아가는 한평생의 삶에서 늘 마지막 순간임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오지 않는 순간.
나는 자기 생각만 하는 이기적인 아빠였음을. 나의 시간 계획에 맞추어 가족들 모두가 따라와 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아빠였음을. 나의 생각이 옳음을 믿고 당연히 존중해 주기만을 바라는 이기적인 아빠였음을. 모두 너를 위한 것이라며 나의 가치관을 강요한 이기적인 아빠였음을.
나의 부족함이 너희들의 삶을 채워 나가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기를. 나의 구시대의 사고가 완전히 새로운 시대의 가치관과 비전을 형성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았기를. "세상에서 최고는 아니었지만, 아빠로서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어요."라고 평가받을 수 있기를.
너희가 우리의 자녀로 태어나 준 것에. 우리의 부족함에도 스스로 온전하게 성장해 준 것에.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한 가족으로 같이 살 수 있는 보람과 영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