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만나지 못한 아내의 오빠를 기리며, 촬영 장소: 포르투갈 알가브, 촬영 장비: 삼성 갤럭시 S9
어느 해질 무렵
나는 석양을 좋아하고, 아내는 싫어한다. 나는 해질 무렵에 하늘로 번지는 아스라한 색상과 몽환적인 분위기에 쉽게 심취하고 호들갑스럽게 감동한다. 아내는 해질 무렵의 쓸쓸함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지는 해가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저 멀리 작은 오두막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면 나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야, 그림 같다!"
아내의 한 마디로 분위기가 냉랭해진다.
"내가 저런 거 딱 싫어하는 것 알지?"
서로가 서로의 기분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 싶어서 서운해서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도 철없는 남편은 서쪽 하늘에 조금이라도 붉은색이 비치면 여전히 맨발로 달려 나갔다.
"야, 죽인다! 야, 감동이다!"
뼛 속에 사무치는 슬픔도 있다
석양에 대한 아내의 거부감을 온전히 공감하기는 힘들지만 이해하고 짐작할 수는 있다.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감정적 요인은 아니지만, 아내에게는 '사라지는 것', '없어지는 것', '밝음이 끝나고 어둠이 시작되는 것', 즉, '죽음'에 대한 잠재된 거부감과 방어기제가 있지 않나 짐작한다. 애완동물을 키우자는 아이들의 성화에도 완강히 거부하며 처음으로 반응한 것도 "우리보다 먼저 죽잖아"였다.
정우성만큼이나 잘 생기고 훤칠했던 청년이 있었다. 잘생긴 친구 오빠를 보려고 이유 없이 집을 들락거리던 여학생들도 많았다. 전두환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서 전국 모든 대학에 휴교령을 내렸다. 오빠는 예정에도 없던 시간의 무료함을 달래려고 친구들과 함께 지리산에 등산을 갔다. 전날 폭우로 계곡물은 불어나 있었고, 찰나의 순간에 발이 미끄러지며 급류에 휩쓸려 갔다. 정우성만큼이나 잘생긴 오빠는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갔다.
나는 정우성만큼이나 잘 생긴 그 오빠를 만난 적이 없다. 첫눈에 반한 아내를 처음으로 만난 날 훨씬 이전의 일이었으니까. 결혼 후에도 한동안 자세히 알지 못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말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만, 4월 초파일 즈음에 처가 가족 모두가 우울해진다는 낌새만 느끼고 있었을 뿐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처가의 음력 4월은 여전히 우울하다.
온갖 명약을 처방해도 낮지 않는 불치병이 있다. 그중에 뼛 속에 사무친 슬픔은 치유가 불가능하다. 우리 뼈가 삭아서 바람에 흩날릴 때 그때서야 슬픔이 가루가 되어서 날아갈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석양을 아내가 싫어해도 이해한다. 그 뼛 속에 사무친 슬픔을 모르고 마냥 좋아한 내가 미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