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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재 May 03. 2021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펀쿨섹좌 풀 뜯어먹는 소리?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니, 이 무슨 펀쿨섹좌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배경과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을 폼나게 말하는 헛소리 정도로 폄하되기도 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한국 현대 불교의 가장 유명한 큰스님인 성철 스님이 1981년에 조계종 종정 취임 즈음에 내린 법어 중 한 구절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알듯 모를 듯, 쉬운 듯 어려웠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여러 가지 시대적인 상황과 맞물려 다양하게 해석되고 확대 재생산되기도 하였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의 화두는 성철 스님이 처음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어떤 분은 중국 송나라 시대의 한 선사의 법어에서 뿌리를 찾고, 다른 분은 고려 말엽 백운화상이라는 스님이 참선을 하면서 제자들에게 말한 유명한 화두라고 언급을 하고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전도서의 말씀처럼 '고유성' 또는 '독창성'으로 번역되는 '오리지널러티'를 끝까지 추적하여 규명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시간과 장소의 씨줄 날줄이 얽히고설켜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면 또 하나의 오리지널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에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의 출발점은 성철 스님이다.


구도에 전념하기 위해 8년간의 장좌불와(長坐不臥)를 수행하였다는 전설과 함께, 서슬 퍼런 군사정권의 통제 속에서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숨죽이며 살 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알듯 모를듯한 메시지를 세상에 날리던 성철 스님은 당시 나에게 펀(fun)하고 쿨(cool)하며 섹시(sexy)한 존재였다.


출처: 나무 위키 성철(승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동북공정에 대한 반감과 대응으로, 고려 말기 백운화상의 화두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의 의미를 추적해 보자. 물론, 송나라 청원 유신 선사의 법어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백운화상이 제자들에게 묻기를, "삼십 년 전에 참선하기 전에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로 보았다. 그러다가 나중에 선지식을 친견하여 깨우침에 들어서서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것으로 보았다. 지금 편안한 휴식을 얻고 나니 마찬가지로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로 보인다. 제자들아, 이 세 가지 견해가 같은 것이냐 다른 것이냐?"


분류된 인식의 3단계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One More Thing!


스티브 잡스가 좋아했던 '하나 더'를 외치며 인식의 4단계로 정리해 보자.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산은 물이고 물은 산이다.

산은 다만 산이고 물은 다만 물이다.


山是山, 水是水

山不是山, 水不是水

山是, 水是

山只是山, 水只是水


의미의 대비와 서술의 간결함이 펀쿨섹좌도 울고 갈 정도로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다.


그대는 어디쯤에?


인식의 4단계를 이렇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싶다. 첫 번째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의 상태는 어린 시절 순수한 나에게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산은 산이었고, 물은 물이었다. 20대 초반에 '성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피터팬 신드롬으로 몸살을 심하게 앓았다. 이러한 심리적 기저에는, 세상을 보니 '산은 산이 아니고, 물도 물이 아니었다.' 그래서, 성인이 된다는 것은 기성의 불합리와 부조리에 적응하거나 타협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를 받아들이기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세월이 흐르고 세상에 부딪히며 모가 난 성품이 깎이고 주어진 환경과 사회 속에서 잘 적응하고 어울려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고 있을 때쯤에 내가 바라본 세상은 '산이 물이기도 하고, 물이 산이기도' 하였다. 어쩌면, '산이 물이어도, 물이 산이어도 상관없이' 살았다. 솔직히, '산이면 어떻고 물이면 어떻냐고. 내가 산을 산이라고 물을 물이라고 해 보았자 뭐가 달라지겠냐고.' 이렇게 살았음을 고백한다.


그래도,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또, 흘려버린 세월로부터 자연스럽게 뒤로 떠밀려 나서 살펴보니, '아무리 그래도' 산은 산이여야 하고, 물은 물이어야 할 것 같다. 혼잣말을 누가 들었는지 모르지만, 재판정을 빠져나오던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했다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힘없는 구시렁구시렁처럼 이라도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어야 한다'. 이미 순수함을 잃어 첫 번째처럼 있는 그대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고 인식을 유지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도,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어야 한다.


또한, '누가 그런 줄 몰라서 그러는 줄 알아?'라는 세상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도, '괜히 힘들게 그럴 필요 있어?'라는 달콤한 위로에도, '꼭 지금 해야 돼? 적당한 시기를 보자'는 회유와 타협의 제안들 속에서도, 용기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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