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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재 Mar 24. 2022

그때 조금 더 나이가
들었더라면 좋았겠다

윤여정


저녁 식사를 간단히 준비한 뒤에 거실 소파에 앉아서 한국 TV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우리 부부의 즐거운 일상 중의 하나다. 어제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선택되었다. 배우 윤여정 씨가 출연하였다. 10년 전, 지인의 초대로 참석한 어느 영화제 저녁 모임에 배우분들과 합석을 하였다. 윤여정 씨가 6인용 사각 테이블의 중앙에 앉았고, 나는 윤여정 씨의 정면 오른쪽 자리에 앉았다. 서로 인사는 하였으나 윤여정 씨가 나를 애써 기억할 이유는 없었다. 다시 만날 기회가 있고, 이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다고 이야기를 꺼내고, 영화제와 관련된 객관적인 정보로 공증하고, 저녁 모임에 참석했던 다른 배우들 이름을 나열하고, 식당의 분위기를 부가적으로 부연해야만 이 정도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 그래요. 영화제에 참석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다른 것은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네요. 아무튼, 반가워요."


장사익


윤여정 씨는 언제나처럼 가식 없이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전했다. 대화 중에, 장사익 씨의 노래를 듣다가 증조할머니가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증조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했던 마음이 미안해서 매일 기도하고 사과를 한다고 했다.


95년도 말쯤에 장사익 씨의 1집 음반 CD를 들고 지방의 도시를 헤맨 적이 있다. 타이틀 곡이기도 한, '하늘 가는 길'을 제대로 감상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짤랑거리는 조종 소리와 흐느끼는 저음의 도입부를 살려내고, 피를 토하듯 울부짖는 장사익의 절규를 담아낼 오디오를 찾아다녔다.


오래 전에 첫 월급을 타서 부모님 속옷을 한 벌씩 사 드리고, 남는 돈을 모두 털어서 구입했던 중저가 인켈 오디오로 듣는 소리로는 무언가 부족했다. 당시 시내에 클래식 음악 감상실이 하나 남아 있었다. 그곳에는 엄청난 크기의 수제 스피커가 있었고, 약간 어둡고 칙칙하기는 하였지만 공간이 휑할 정도로 넓었다. 단골이 되고, 갈 때마다 눈도장을 찍었다. 오디오 애호가였던 주인장에게 억지로 말을 걸고, 오디오의 탁월함을 칭찬하는 지속적인 아부 끝에 하늘 가는 길을 틀 수가 있었다. 손님들이 일찍 끊어진 비 오는 저녁에, 클래식 음악 감상실에서, 혼자 앉아서, 눈을 감고, 하늘 가는 길을 들었다.


비 오는 날의 습기와 환기가 잘 되지 않았던 오래된 음악 감상실의 퀴퀴한 냄새를 뚫고 쩌렁쩌렁 조종이 울린다. 맑고 카랑카랑한 소리가 고막을 타고 들어가서 부딪히며 머리 속을 비워낸다. 상여소리 같은 저음의 흐느낌이 바닥을 타고 와서 발끝에 접속하고 몸을 타고 오른다. 한스러운 절규가 빈 공간을 가로질러 날아와서 가슴을 두드린다. 징소리와 함께 나는 접신한다.


https://youtu.be/C8xFCDbCPKM

장사익, 하늘 가는 길


그날 이후 내 몸은 더럽혀졌다. 완벽한 소리에 내 몸이 오염되었다. 뽕 맞은 약쟁이처럼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오디오 잡지를 뒤지고, 하이파이 전문점을 기웃거리며 주인장을 괴롭혔다. 월급쟁이의 빈약한 재정이 발목을 잡았고, 차근차근 태어난 사랑스러운 아들 딸의 생생한 울음소리가 현실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소리를 편식하지 않고 잡식성이 되었다. 물론, 가산을 탕진할 정도는 아니지만, 다양한 조합을 시험해 보았음을 고백한다. 시행착오 끝에, 춥고 배고플 때 먹었던 눈물날 정도로 맛있었던 음식 맛을 나중에 찾기가 어렵듯이, 그때의 맛있는 소리를 똑같이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비틀어 왜곡된 어떤 소리에 타협하고 나의 취향으로 선택하여 즐길 뿐이다. 


장인


여기서 장인은 장인 정신의 장인이 아니다. 말 그대로, 아내의 아버지를 지칭하는 장인이다. 어제 윤여정 씨의 장사익 씨에 대한 언급이 뇌리에 남아서 아침부터 장사익 선생의 노래를 틀었다. 예년보다 늦게까지 우기가 오기를 부리는 바람에 한 주 내내 비가 내리고 있는 터라 아침의 분위기가 늦은 오후의 분위기와 차이가 없었다. 장사익 선생의 때로는 구슬프고, 때로는 구성진 목소리가 이른 아침을 채우는데 어색하지 않았다.


아내가 거실로 내려오면서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부르는 줄 알았네."


나도 장인어른을 떠 올리고 있었다. 돌아가신 지가 이십 년이 넘었다. 노래를 잘하셨지. 노래의 창법이 장사익 선생과 똑같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JjPGjdPNIuc

장사익, 봄 날은 간다


장인어른과 30대를 같이 했던 나는 그분의 멋과 흥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젊었다. 세상을 보는 나의 인식이, 겨우 산이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니라는 사실에 저항감을 갖고 있었던 시기였을 뿐이다. 산이 물이고, 물이 산이라는 이해만 있었어도 좀 더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부족했던 멋과 흥을 따라서 배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갑자기 떠나가실 때까지도 몰랐다. 무수한 세월이 흐른 뒤 오늘에서야 그 때 젊은 나의 미성숙함이 아쉬웠다. 유연하지 못하고 경직되었던 나의 가치관이 안타까웠다. 장인어른과 시간을 같이 하였던 그때에 내 나이가 조금 더 들었었다면 좋았겠다. 그래서, 오늘 그립고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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