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입 다물라'는 2001년에서 2002년에 걸쳐 SBS에서 방영된 대하사극 '여인천하'의 명대사 중 하나로, 사람들의 뇌리에 가장 크게 남아서 아직까지도 여전히 인터넷에서 짤로 쓰이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 중종이 신하들에게 분노하며 날리는 대사이지만 요즘은 스스로에게 채근하며 다짐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 입 다물라.
아인슈타인이 말하길
"만약 A가 인생에 있어 성공이라고 한다면, 성공의 공식은 A=X+Y+Z이다. X는 '일하는 것'이고, Y는 '노는 것'이며, Z는 '입 다물고 있는 것'이다." "If A is success in life, then A = X + Y + Z. Work is X, Y is play, and Z is keeping your mouth shut."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1929년에 한 말로 기록되어 있는데, 아인슈타인이 이렇게 말한 배경이나 부연 설명이 없고, 조금씩 다른 다양한 영어 예문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영어로 한 이야기도 아닌 듯하여, 떠돌아다니는 여러 예문 중에서 이해하기 쉬운 것을 나의 취향에 맞추어 인용을 했다. 원문을 찾는 정도의 정성과 성실함은 있어야 한다고 혼을 내시겠지만 아쉽게도 영어 외의 다른 외국어는 해독이 불가능하여 시도하지 않았다. 한국어로 번역되어 이해되어질 것이기 때문에 진위여부 확인 외에 원문의 인용이 갖는 의미가 크지 않다고 스스로 타협한 게으른 합리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영재 교육'에 대한 연구 논문을 준비하면서 소위 각 분야에서 탁월했던 천재들에 대한 책과 연구 자료를 읽은 적이 있었다. 학교 현장에서 소외된 학습 부진아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있어도, 동일하게 적절한 교육적 처치를 받지 못하고 있는 영재 아동들에 대한 적절한 교육과정의 도입도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논문은 제출되었다.
논문을 제출한 후에 개인적으로 큰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부모들처럼, 아직 어린 아들 딸이 혹시 '아직 발현되지 않은 천재일지도 모른다'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실제로 걱정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천재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천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뭐, 이런 것을 한자로 '기우(杞憂)'라고 한다는데. 쓸데없는 걱정.
불행한 천재들
예전에는 '머리가 좋다' 하나로 두리뭉실하게 천재를 표현하였지만, 지금은 영재성에 대한 다양한 개념 정의와 판별 방식이 있다. 성취한 결과로, 역사적으로 천재로 불리던 많은 사람들이 한 분야의 천재로 불릴 만큼의 성취를 이룰 수 있기 위해서는 삶에 있어서 'X'(일하는 것)의 비중이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이다. 'Y'(노는 것)가 전혀 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억지로 공식을 만들자면, X=Y, 즉, 일하는 것이 노는 것인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분야에 완전히 '미쳐서', 학술적 표현으로는 '몰입'하여, 그것밖에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럼, 가족들은 어쩌고? 자녀들은 어쩌고? 자신의 일에 미쳐서 내팽개친 가족과 자녀들은 미치는 거다. 정말로, 잘 알려진 천재들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자녀와 가족들 중에서 정신 질환으로 힘들어했던 사례도 많았다. 많은 천재들이 부인과 자식들과의 사이도 좋지 않았고, 평생 미움과 원망을 받은 경우도 많았다. 아인슈타인 또한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것'에 대한 시끄러운 논쟁
아이러니하게도, 아인슈타인 인생 공식의 'Z', '입을 다물고 있는 것'에 대한 의미의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입을 다물라고 하는 것에 대해 입을 다물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배경이나 의미에 대한 해설이나 주석을 남기지 않은 탓이리라.
사람에게 입이 하나고 귀가 두 개 있는 것은 말하는 것보다 두배나 더 잘 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가능한 입을 다물고 잘 들어라'는 뜻이다. '말보다는 행동이다'는 말처럼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함'을 강조했다. '어떤 말이든 결국에는 자신에게 돌아오게 마련이니 전혀 말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뜻이다. 인생에서 X(일)와 Y(놀이)가 조화를 이루어 완벽해질 때 입을 열어서 조화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는 '소리 내지 마 우리 사랑이 날아가버려'식의 이승철의 노래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해석도 있다. '말하지 마라'는 글자 그대로 말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생각하라'는 의미로 해석하여 '입을 다물고 심사숙고하여 판단하라'는 뜻이다. 스위스 특허국에 근무했던 아인슈타인의 이력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에게 떠들어서 특허 등록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라'라는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다.
심지어 '입을 다물고 있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며, '불의나 사회 이슈에 대해 입을 닫으면 안 된다'라고 주장하고,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가진 1달러를 교환하면 여전히 각각 1달러를 가지게 되지만, 입을 열어 서로 가진 하나의 아이디어를 나누면 각자 2개의 아이디어를 갖게 된다'며 오히려 입을 열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한다.
달을 가리키는데 왜 손가락을 보니
나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것'에 대해서 입을 열어서 주절대고 싶다. 온갖 상징과 지식을 레고 블록처럼 끼워 맞추어 가며 내 말이 가장 적절한 의미의 해석이 아니냐고 주장하며 시끄러운 논쟁에 끼어들고 싶다. 아인슈타인이 나의 이런 마음의 상태를 미리 꿰뚫어 보며 '입을 닫아라'라고 했나 보다. 그동안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그동안 읽은 책에 비추어, 그동안 축적해 온 지식에 비추어 나의 주장만이 옮음을 증명하며 세상 모든 일에 간섭하고 나대려는 욕심으로 이 만큼 앞으로 튀어나온 나의 입에 아인슈타인이 야무지게 한 방 먹인다. 지금은 달을 보지 말고 손가락을 봐. 뜻을 해석하지 말고 내 말 그대로 입을 닫고 있어.
진위 파악이 힘든 정보가 너무 많고, 생각이 많아지고, 그래서 입을 닫고 있기가 너무 힘든 요즘 세상이다. 작금의 대선판도 스스로 다물지 못한 입 때문에 다들 난감해 하고 있다. 내 삶과 별로 상관 없는 아인슈타인이 100년 전에 했다는 말이지만, 시간을 흘러 흘러 오늘 나에게로 와서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