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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일기가 아니어도 돼

나는 항상 완벽할 수 없으니까

by 화양


며칠 동안 계속 생각했다.

'아, 브런치에 글을 써야 하는데……'


그러나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다.

일기처럼 가볍게 쓰자고 말은 했지만 쉽지 않았다.

SNS에 글 한 줄도 공개적으로 올리기 어려워하는 나에게는 일기조차도 기승전결이 명확하고 의미가 있어야 하는 작업이 되어 버린 것이다.


깨닫는 순간 일단 브런치를 켰다.


아무도 내 글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 테고,

우연히 이 글을 읽어 주는 감사한 분들도 사실 흘러들어와 어쩌다 내 내면을 슬쩍 엿보고 흘러갈 뿐,

정말로 이 글에 어떠한 기대를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처음부터 많은 노력과, 공과, 기대를 들이는 것일까?




내가 무언가 하고 싶어지면 1부터 100까지 전부 상상해 본다.


예를 들어, 나는 유튜브를 찍어 보고 싶어했다.

유튜브 촬영과 업로드는 쉽다. 그냥 카메라를 들고 무엇이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찍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꼭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이 든다.


'내 방은 예쁘지도 않은데 이걸 보나?'

'내 얼굴은 내보내기 싫은데, 얼굴 없이 찍으면 이걸 누가 봐?'

'컨텐츠 뭘로 하지? 이런 건 아무도 안 보지 않나?'

'찍고 편집하는 데에 너무 오래 걸리지 않나?'


피어올랐던 의욕이 사라지는 데에는 오 초도 걸리지 않는다.

마음먹고 움직이는 데에는 큰 힘이 들지만, 때려치우는 것은 쉬우니까.


나는 항상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뭔가 결심하고 나면 금세 관두었다. 안 될 이유를 찾으면, 그것이 꽤 그럴듯해 보였으니까.






나는 신기할 정도로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하고,

또 신기할 정도로 하나를 오래 끈기 있게 붙잡지 못한다.


예컨대─ 나는 타로 카드 읽기에 관심을 두었었다. 지금도 기본적인 것들은 다 읽을 줄 안다.

그런데 또 일정 수준까지 가면 갑자기 흥미가 뚝 떨어진다.

그 이상 깊이 파고들어 공부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만사에 그렇다. 얕고 넓게 알 때는 재미있는데, 깊이 파고들면 그때부터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나는 뭔가를 깊이, 오래 사랑하고 또 탐구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나에게 세상은 너무 자극적이고, 또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하니까.


한 분야의 대가, 한 분야의 실력자…… 같은 사람을 보면 감탄스럽고 부러우나 나는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안다.

나는 이것도 좋아하고 또 저것도 좋아하면서, 그렇게 넓게 살 팔자인가 싶다.





지난번 쓴 글에,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이 공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써 두었다.

여전히 나는 내가 부끄럽고, 그래서 이곳에 무언가 당당하게 남기기가 퍽 어려운 것 같다.

방법을 생각해 보았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아카이빙해 가는 식으로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좋아하게 된 것,

내가 사랑하는 이야기,

내가 즐기는 것들.


내 원동력은 애정에서 나오니까.

내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이곳에 들르고 이 글을 읽어 주는 당신도.

나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이지만,

내 취향을 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모든 것을 당신에게 내 보인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일종의 수치심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만족감을 느낀다.

당신이 이것을 받아들여 준다면 말이다.




무언가를 좋아할 때에 사람은 가장 또렷해진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다른 모든 감정을 끌고 오기 때문이다.

슬픔, 분노, 좌절, 열망, 욕망…… 그런 것들을 한번에 느낄 수 있다.

나는 더 많은 것을 좋아하고 싶다.


최근 들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문득 당혹스러웠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나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심이 없단 말인가?

내가 나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가족이 되어 주어야 하는데.


나와 대화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주변에 항상 이런저런 조언을 하는 편이지만,

나 자신부터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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