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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욕망이 있는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인간의 욕망이 부딪히는 방향에 관하여

by 화양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했고, 그래서 오늘은 내가 즐겁게 읽은 최근의 한국 영화에 관해 짤막하게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너무 길게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뭔가 '제대로 된 것'을 보여 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혀 자꾸 키보드를 잡지 못하고 주저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제는, 요즘 덕후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나만 그럴 수도) 영화인 파과이다.



** 아래로는 영화 <파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파과에 관해서는 솔직히 24시간도 떠들 수 있다.

이유인즉, 내가 원래도 구병모 작가님의 오랜 팬이고, 원작 소설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른 소설들도 당연히 챙겨 읽었는데 특히 파과는 유난히 내 심금을 울렸다.


킬러 이야기라니. 난 지금도 킬러라면 사족을 못 쓰는 작가다.

그런데 킬러, 거기다 중년, 거기다 여성 주인공?

너무 좋아서 기절하지 않은 것이 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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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을 읽을 때는 욕망보다 '탄생과 죽음', '늙음과 젊음'에 더 집중했었다.

욕망은 인간의 부산물이자 당연히 뒤따라오는 사지 같은 것. 노인의 욕망이 모욕당하거나 무시당하고 없는 존재 취급받는 것에서 벗어난다는 느낌도 받았다.

(사실 내가 그런 소재를 좋아하는 것도 있다. 그래서 웹툰 '남남'도 정말 재미있게 봤었는데, 이 이야기는 다음에 따로 다루고 싶다. 정말 좋아하는 웹툰이라서.)


여하간, 원작에서는 투우의 존재가 나에게 있어 그다지 상징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투우와 조각의 관계도 그다지 도드라지지 못했는데, 그것은 소설의 카메라가 조각의 발걸음과 시야를 공유했기 때문일 것이며, 그렇기에 조각이 투우에게 흥미가 없음을 독자 또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여남은 기억 속 소설 '파과'는 강 선생과 조각의 로맨스(짝사랑)가 더 주가 된다. (아닐 수도)


그러나 영화는 사뭇 다르다. 따지고 보면 이 작품은 모든 이들의 욕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욕망(류), 평범한 삶을 살고 애정을 느끼는 타인에게 향하는 욕망(손톱-조각), 나에게 애정을 내어 준 사람과 함께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투우)... 강 선생도 어떻게 보면 나의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욕망이 얼기설기 엮이다 보니 무척이나 역동적이고 뜨거운 관계 구도가 만들어진다.

류는 아내를 향하고, 조각(손톱)은 류와 강 선생을 향하고, 투우는 조각을 향한다.

그리고 서로를 마주 볼 일 없이, 서로의 욕망만을 끌어안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욕망에는 선도 악도 없다. 욕망에서 발생한 행위는 몰라도 욕망은 재단하기가 어렵다.

강 선생에게 가진 조각의 욕망은 악한가? 조각에게 가진 투우의 욕망은 선한가? 가족을 지키고자 한 류의 욕망은 선해될 수 있는가?


영화에서는 어떤 답도 주지 않는다.

그저 마지막까지, 조각은 '주어진 삶을 살아갈' 뿐이다.

과연 방역업은 옳은 것인지, 아비 잃은 채 자란 투우를 직접 살해한 조각의 행동은 정당화되는지, 그런 의문에 관해서는 해소해 주지 않는다.

그저 모든 욕망이 부딪혔다가 사라진 그 자리에 관객을 남겨 둘 뿐이다.


그러나 모든 영화가 의문을 해소해 줄 필요를 갖지는 않는다.

그저 흠뻑 빠졌다가, 나오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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