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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풍추영: 아버지라는 존재에 관해

선인이 꾸리는 가족, 악인이 꾸리는 가족

by 화양


사실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는 친구인데, '포풍추영'에 세븐틴 멤버 '준'이 나온단다.

팬인 친구를 따라 보러 갔다. 액션 영화라면 껌벅 죽는 나를 포섭해서 (바로 넘어갔다) 관람했는데, 이게 웬걸?

기대 이상으로 정말 훌륭했다. 단순히 액션 영화가 아닌 오락 영화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을뿐더러, 어느 한쪽으로도 크게 치우침이 없었다.

무엇을 기대하고 봐도 손색이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이 국내 영화 <감시자들>과 같은 원작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더더욱 놀랐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각본이 탄탄하고, 특별히 흠잡을 곳이 없었다.

오랜만에 보는 정말 훌륭한 웰메이드 액션 오락 영화였는데, 한 가지 장벽이 있다면... 역시 제목일 것이다. (아직도 나는 이 제목에 적응이 안 됐다.)



** 아래로 포풍추영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요약하자면 간단하다. 사실 스토리는 아주 신선한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감시자들이 나름 유명작인 국내에서는-.

전형적인 잠복수사물. 양가휘의 조직-늑대 무리-를 소탕하기 위해, 경찰들은 AI부터 은퇴한 경찰까지 함께 힘을 합치고, 결국 성공해 낸다는 이야기다.

스토리에 특별히 큰 구멍이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눈에 띄는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다른 작품보다 더 몰입되는 이유는 감정선 때문일 것이다.



궈궈(장쯔펑 분, 경찰 소녀)는 아버지를 잃었다. 그의 부재는 황더중(성룡 분, 은퇴한 경찰)이 만든 것이다. 경찰 잠복 업무 중 사망했기 때문이다.

궈궈에게 황더중은 원래 애증의 존재였다. 황더중이 자신을 계속 보살펴 왔음을 알고 그 역시 업무 중인지라 어쩔 수 없음을 알지만, 아버지는 이미 사망했으니까. 황더중 역시도 궈궈에게 미안함과 안타까움, 괴로움 등이 복잡하게 쌓여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중 수사 과정을 함께하며 황더중이 궈궈에게 진짜 '아버지'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서로를 어떻게든 보호하려는 깊은 사랑과 내밀한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최고의 파트너이자 최고의 부녀 관계로 거듭난다.


이러한 이미지는 비단 궈궈-황더중이 아닌, '늑대 무리'에도 똑같이 드러난다.

푸룽성(즉 그림자, 양가휘 분)은 그의 아들 여섯 명과 함께 다닌다. 그의 아들들은 고아원에서 지내던 아이들로, 한 명도 그의 친자는 없다.

더군다나 푸룽성은 아들들에게 폭언, 폭력을 일삼아 여섯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극심한 상황.

작중에서 대부분-첫째를 제외한-의 아이들은 아버지를 진짜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괴롭히고 몰아넣기 위해 존재한다고 여길 뿐.

그러나 푸룽성이 스스로를 위험에 몰아넣고 미끼가 되어 아들들을 살리려고 했을 때, 그가 '아버지'로서 오랜 세월 살아왔음이 확고하게 증명된다.


실제로 보편적 개념의 아버지, 즉 부모란 포용적이고 관대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부모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좋은 부모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푸룽성이 좋은 부모였을지 나쁜 부모였을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범죄자고, 아이들까지 범죄에 끌어들인 악인이니까. 의견이 갈릴 수도 있겠다.

푸룽성은 결국 완벽하게 희생적인 아버지는 아니었다. 아들이 자신의 뒤통수를 치리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결국 제 손으로 아들의 숨을 끊었다. 어찌 보면 그것은 비정한 훈육에 가깝다.


푸룽성이 원한 것은 궈궈와 황더중 같은 부자 관계였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그것은 푸룽성의 삶에 있어 불가능했다. 하지만, 개인의 삶과 부모로서의 삶이 완전히 다른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존재가 부모로서는 최고의 존재일 수 있듯이.



그렇기에 이 작품은 단순히 액션이 명쾌하고 화려한 오락 영화에서 그치지 않는다.

액션은 그저 부차적인 꾸밈 요소일 뿐, 근본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가족애다.


물론 오락 영화의 틀을 아주 제대로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가족애도 아주 유쾌하고 흥미롭게 서술된다. 신파라고 할 만한 구간도 많지 않고, 오히려 전개 속도가 너무 빨라 슬픔에 젖어 있을 틈도 얼마 주지 않는다. 액션도 무척 촘촘하다.

오히려 그렇기에, 그들의 감정선은 크레딧이 다 내려가고 난 뒤에서야 제대로 곱씹을 수 있게 된다. 여운이 더 길게 남는 셈이다.


액션에 관해서는 사실 리뷰에서 논할 필요가 없겠다. 세련되고 화려하며 어떤 측면에서는 정통적이다. 직접 봐야만 한다. '존 윅 4'에서 느꼈던 즐거움은 고스란히 있었고 지루함은 빠졌다.


이미 슬슬 상영 종료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OTT에라도 올라오면 다들 봐 줬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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