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나는 왓챠피디아의 예상 별점을 꽤 신봉하는 편이다. 그 녀석들은 가끔 고장 나는 친절한 스마트 TV 같다. 대부분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잘 안내해 주지만, 가끔 먹통이 돼서 신뢰를 잃는다. 분명 예상 별점 4.2점을 줘서 기대감에 부푼 채 영화를 보는데 웬 웰메이드 쓰레기 영화가 있으면 그 두 시간 동안 그냥 일이나 하는 게 나았을 거라는 슬픔과 반면교사 삼자는 희망이 교차되곤 한다.
그럼에도 예상 별점은 적어도 9할 정도는 적중한다. 하지만 (추후 기술할 테지만) 내가 기껏해야 일주일쯤 전에 이 별점에 뒤통수를 처맞은 적이 있어서 불신 가득한 눈으로 영화를 켰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오늘부터 다시 왓챠피디아 예상 별점 신봉자다.
이 글은 델마와 루이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30년 전 작품이긴 하지만) 볼 생각이 있으시다면 읽지 마세요.
이 작품이 1991년 작품이라니! 영화를 본 이후 수십 수백 번 감탄했지만 아직도 벌어진 입이 닫히지 않는다. 대체 어떤 천재가 이런 작품을! (이라고 생각한 뒤 궁금해져서 감독을 검색해 봤더니, 내가 좋아하는 작품인 블레이드 러너의 감독이자 스토커의 제작자였다. 각본의 영향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한 감독의 작품 중 본 영화가 세 개인데 셋 다 호평이라는 건 내 취향이란 뜻이겠지!)
사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고전은 일종의 교과서다. 없으면 글을 쓸 수가 없되 종종 지루하다. 이미 어느 정도는 아는 이야기들이고, 또 가끔은 너무나 교육적이고 학문적이며 어떤 때는 기계적으로 머리에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의 나는 2010년 이후로 나온 책이나 영화만 봤고 고전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나는 마치 국어책을 받아들자마자 모든 페이지를 독파하는 신입생처럼 열정적으로 이 영화를 탐독했다(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다). 이건 정말 교과서였다. 그것도 아주 훌륭한, 본질적 의미의 교과서.
앞선 존 윅 4 포스트를 읽은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액션을 좋아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긴박감을 좋아한다. 긴장감과 불안감 없는 영화는 나를 곯아떨어지게 만든다. 사건이 치밀하게 이어지거나 액션이 긴박하게 이어져야만, 그것도 아니면 연출이 정신없이 나를 홀려 놓아야만 즐겁게 볼 수 있다.
'델마와 루이스'는 정서적 긴장감을 주는 영화다. 단순히 살인을 일으킨 여성이 도망치는 추적극이냐 하면, 글쎄. 그 이상의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처음에는 그 불안감이 불쾌감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불안과 불쾌를 확실하게 분간하지 못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가 느낀 갑갑하고 안타까운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단호하게 분류할 수 없으므로, 대충 섞어서 쓰겠다.) 델마가 남편에게서 도망치지 못하는 상황도, 도망쳐 놓고 망할 놈의 술집으로 들어가는 것도, 술집에서 웬 놈의 남자를 만나는 것도, 그래 놓고 다른 남자(브래드 피트는 와중에 잘생겨서 더 빡쳤다!)를 또 끌어들이는 것도 너무 짜증이 나서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제발! 좀! 소리가 절로 나오고 머리털을 쥐어뜯을 뻔했다.
있는 그대로 표현하건대, 나는 그쯤에서 델마에게 분노했다. 이야기 바깥에 있는 관객으로서, 제삼자로서, 저 망할 놈의 개수작이 보이지 않냐고 손가락질하고 싶었다. 누가 봐도 남자들이 흑심을 품고 있는 게 훤했으니, 악어 입에 대가리를 집어넣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화가 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남들의 삶을 3인칭으로 말할 때는 행위에 대해 지적하기가 너무나 쉽다. 1인칭이 되는 순간 어려워지는 것이지.
그리고 2막이 시작되었다.
1막과 2막으로 나누어 표현한 것은 그때부터 델마가 각성하기 때문이다. 영화 안에서는 'awake'라고 말하는 바로 그 상태. 델마는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면서 '타고난 것 같다' '재능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고, 루이스도 델마에게 '넌 원래 그랬어'라고 말해 준다. 루이스에게도 운전을 죽여주게 하는 재능이 있고 그것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그래서 마지막의 추격전 내내 루이스가 운전대를 잡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내가 말하려는 각성은 델마를 위주로 하고 있다.)
사실 이 각성의 전조는 아주 처음부터 읽을 수 있다. 휴가를 떠나는 차 안에서 두 다리를 수납공간 위쪽에 올려 놓는 순간 루이스가 '델마?' 하고 지적한다. 그러자 델마가 얌전히 다리를 내린다.
델마가 각성 상태에 들어가면서 하는 행위들은 이렇다. 예의없이 다리를 올린다(이건 정확히는 각성 전이었던가), 담배를 피운다, 바지를 입는다, 함부로 욕을 한다, 강도질을 한다, 총질하고 자신을 쫓는 경찰을 제압한다, 자신을 모욕하는 남자를 혼내 준다…….
놀랍도록 본능적이고, 놀랍도록 반면적이다.
델마가 한 행동은 대부분 영화에 나온 남성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하고 있던 것들이다. 예컨대 다리를 올리는 행위나 강도질 자체도 브래드 피트(배역 이름이 뭐더라?)가, 바지는 뭐, 모든 남자가, 담배와 욕설도 마찬가지. 제압하고 본능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 여기 나오는 모든 남자들이 본능적으로 행동하며 잘 살고 있지 않나?
이 말인즉, 델마와 루이스는 그냥 삶을 원한 것뿐이다. 죽은 듯이, 조용히, 얌전히, 통제되는 삶 말고. 그냥 그렇게 사는 거지 뭐─ 그런 삶 말고.
1막을 보았을 때 느낀 께림칙함은 바로 지나치게 본능을 추구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의 감정이었다. '정신 차려! 아까 저 XXXX 머리통에 총알을 박았다고!(머리통이었나 가슴이었나 기억은 안 나지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 보면, 델마가 딱히 잘못한 건 없다. 딱히? 아니, 전혀 없다. 거기서 치근덕거리고 범죄를 작정한 강간범 문제, 쌍방 합의 후 베드인해 놓고 돈을 훔쳐 간 강간범 문제다. 델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세상에, 영화 중후반부쯤 이걸 깨달았을 때 내 자신의 뺨을 대략 50번 정도 후려치고 싶었다.
델마의 행동은 너무나 정당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로는 영화의 흐름이 완벽하게 예상됐다. 사망할 것임이 훤히 보였다. 그러니까…… 사망이 아니라, 살아야 할 테니까. 새벽 하늘이 밝아 오고, 절벽 너머에는 밝은 하늘이 있다. 아! 정말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타로 카드의 'Death'가 가끔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듯이. 하늘에도 새로운 길이 있다면 델마와 루이스는 질주하지 않을까?
루이스와 델마를 계속 뒤쫓던 경찰관은 그들에게 '살고 싶지 않냐'고 했지만, 그거야말로 그 경찰관이 남성 캐릭터로 등장한 가장 큰 이유다. 너 같으면 살고 싶겠냐?
경찰관은 일견 다른 남성 캐릭터들과 차별화된 듯하면서도 결국 델마와 루이스를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는 델마와 루이스가 '원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 거라고' 믿는다. 강도─그러니까 브래드 피트─가 그들을 속이지 않았다면 과연 강도질을 했겠냐고 힐난한다.
어떤 측면으로는 그것도 맞는 말일 수 있다. 단순히 행동으로만 보자면, 그들은 도덕과 윤리를 아는 사람들이므로 굳이 선빵을 맞기 전엔 주먹을 날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델마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일까? 원래 너무나 도덕적이고 무결한 사람이라서? 무결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무결하지 않으면 죽음이 목전까지 다가오는데?
사실 이 영화는 캐릭터 하나하나가 거대한 비유에 가깝다. 장면 하나, 연출 하나, 옷차림의 사소한 변화, 헤어 스타일(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역시 델마와 루이스의 스타일이 마지막 장면에서는 거의 같아져서, 둘의 얼굴을 쌍둥이처럼 보이게 만든 뒤 교차시키는 부분이었다) 등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서문에서 교과서라는 표현을 쓴 이유도 그때문이다. 완벽하게 알찬, 부족함 없는 구성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렇게 구구절절 썼는데 아직도 쓸 말이 산더미 같을 정도다. 다 쓰고 누웠는데 떠들고 싶은 주제가 세 개나 더 떠올랐다. 내가 수다스러운 게 아니라 이 영화가 날 수다쟁이로 만드는 거다!)
오해할까 봐 말해 두지만, 나는 국어 교과서를 읽으며 울었던 학생이다. 그러니 델마와 루이스도 교과서에 실리게 된 것을 반가워하며 나와 함께 도로를 질주하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