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에서 공작식 축산업의 시초가 되다.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과 유럽에서 닭들은 인간에게 그리 필요한 가축이 아니었다. 특별한 날에 먹는 별미 음식이었고 달걀은 고급 식재료였다. 시골에 있는 소규모 농장들이 닭을 키웠으며, 보다 큰 농장에서 주 수입원으로 달걀을 팔기도 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전쟁이 발발하면서 물자 공급이 어려워졌고 식량 위기가 왔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각 가정에게 정원 텃밭을 가꾸면서 음식을 장기 저장하고, 닭을 키움으로써 국가의 전쟁식량 공급에 의존하지 않도록 하였다. 결과적으로 1918년까지, 미국의 뒷마당 닭들은 전쟁을 이겨내는데 큰 공헌을 했다. 닭들은 스스로 먹이를 찾아 먹고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똥을 싸서 땅을 거름지게 만들어 신선한 채소로 돌려주었으며, 정원에 있는 해충들을 먹어 없애고 건강한 알을 낳았기 때문이다. 교외 지역에 사는 닭들이 낳은 잉여 알들은 좋은 수입원이 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영국 역시 자국의 승리를 위해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몇 가지 캠페인을 벌였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자급자족’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식료품 수입이나 유통이 어렵기 때문에 각자 자신이 먹을 것을 재배해 먹을 것을 권장했다.
Dig for Victory 승리를 위해 땅을 일궈라
또 다른 핵심은 ‘낭비를 줄이자’였는데, 음식물쓰레기를 가축인 닭이나 돼지에게 먹이도록 권고했다. 오늘날의 ‘Zero Waste(제로 웨이스트)’다.
사람들이 스스로 먹거리를 재배하고 닭을 키우면서 미국과 유럽은 각 지역 안에서 음식의 공급이 이뤄질 수 있었다. 특히 미국이 굶주리는 연합군들에게 음식을 조달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이기도 했다. 이렇게 전쟁 중에 집에서 자급자족을 위해 마당 텃밭을 가꾸는 형태를 미국에서는 Victory Garden(승리의 정원)이라고 불렀다. 직접 노동을 투자해서 신선한 농산물을 얻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에, 승리의 정원은 단순 전쟁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을 떠나서 시민들의 성취감을 충족시켜주었다. 이를 계기로 마당 정원 가꾸기는 일상의 일부분이 되었고, 전국적으로 마당에 닭을 키우는 집이 늘어났다. 1943년 5월, 미국 전역에는 1,800만 개의 ‘승리의 정원’이 생겼다. 그중 3분의 2가 도시에, 3분의 1이 농장에 있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정부는 ‘승리의 정원’ 캠페인을 중단했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1946년 봄부터 채소를 심지 않았다. 뒷마당 닭들과 자급자족의 종말이 찾아왔고, 전국적인 식량 생산의 방식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닭은 서서히 대량으로 사육되기 시작됐고 생산 능력의 향상과 낮은 인건비로 인해 달걀의 가격은 폭락했으며, 많은 영세농들이 파산했다.
대형 슈퍼마켓이 마을의 작은 정육점을 대체하고 많은 사람들이 농장 생활을 그만두고 교외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교외의 확장은 농지를 도시에서 더 멀리 밀어냄과 동시에, 사람들의 밥상과 농장의 거리를 떨어뜨렸다. 농부들은 더 많은 종류의 새를 가축화했고, 사료에 항생제와 성장 호르몬을 섞기 시작했으며 냉장시스템을 통해 고기를 수백, 수천 km 멀리까지 운송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1900~1920년대에 암탉 한 마리는 1년에 80~150개의 알을 낳았는데, 대규모 사육시설이 서서히 들어서던 1920~1930년대에 암탉 한 마리가 1년에 250개까지 낳게 되었다. 1950~1960년대에는 닭고기가 훨씬 대중화되었고 냉장보관 기술이 발명되고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약물의 사용이 증가했다. 그렇게 닭의 평균 크기는 커져갔다. 기어이 오늘날, 암탉 한 마리는 1년 365일 중 325개의 알을 낳는다.
이렇게 인간이 권력 투쟁을 위해 일으킨 전쟁은 닭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많은 사람들의 목숨도 앗아갔지만 그와 동시에 사람 목숨의 몇 천 배에 달하는 닭들이 지금까지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중 상당수의 시체는 냉동창고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방치되다가 사람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폐기 처분될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먹을 것이 과하게 넘치는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우리는 다가올 식량위기의 시작을 맞이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인해 기름, 밀, 대두 등의 가격이 급등하였고 그에 따라 세계적인 식량 시스템에 혼란이 생겼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쌀을 포함해서 22% 정도 된다. 정말 많은 부분에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유난히 먹을 것에 ‘저렴함’을 요구해왔던 한국 사회에서 수입 원재료값이 폭등하고 큰 위기가 찾아왔다. 누군가는 내년에 IMF를 능가하는 경기침체가 올 것이라 예측한다.
내 먹거리는 내가 책임져야 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우리는 'Victory Garden(승리의 정원)'이 아닌, 'Hope Garden(희망의 정원)'을 가꿀 준비가 되어 있는가?
1. Bawk to the future: How backyard chicken keeping began as a war effort, austintexas.gov, http://www.austintexas.gov/blog/bawk-future-how-backyard-chicken-keeping-began-war-effort
2. Government posters, National Archives, http://www.nationalarchives.gov.uk/education/resources/government-posters/
3. A History of Chickens: Then (1900) Vs Now (2022), THE HAPPY CHICKEN COOP, https://www.thehappychickencoop.com/a-history-of-chickens/
글쓴이: 다님
다양한 사회문제를 주제로 글을 쓰고 영상물을 만듭니다. 비거니즘(채식) 주제의 책을 만드는 1인 출판사 ‘베지쑥쑥’을 운영 중이며, 공장식축산업과 육식문화를 주제로 한 단편 다큐멘터리 <여름>을 연출하였습니다. 현재 생태적 자립을 위한 귀농을 하여 경남 밀양에 거주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