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레이션 우주와 바이러스에 대하여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H5N1이 스페인 Carral에 위치한 밍크 농장의 밍크들에게 감염되었다는 연구가 2023년 1월 19일 발표되었다. 조류 인플루엔자 H5N1이 변이를 통해 포유류인 밍크에게도 퍼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연구자들은 “This species could serve as a potential mixing vessel for the interspecies transmission among birds, mammals and human,”(이 종은 조류, 포유류, 인간 사이의 종간 전염을 초래할 잠재적인 혼합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했다.
즉, 조류에게만 퍼지던 조류인플루엔자가 포유류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될 수 있음을 이 연구는 시사한다. 지금과 같이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대규모로 동물을 계속 사육하면, 동물에게 퍼지는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미 다른 동물에게 퍼지는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했듯이 이는 멀리 있는 일이 아니다.
‘시뮬레이션 우주론’에 대해서 들어 보았는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 우주가 시뮬레이션이라는 말 인데, 꽤 많은 과학자가 이에 대한 이론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 또한 ‘99.99%의 확률로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다.’ ‘현재 인류가 멸종의 길로 가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길 바라야 한다.’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는 이 시뮬레이션의 주인공이 인간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만약 이 우주가 시뮬레이션이라고 한다면, ‘이 시뮬레이션의 목적이 무엇인가?’ 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시뮬레이션의 주인공은 바이러스일 수도 있다. 2020년 1월 28일 ‘전염병 주식회사(Plague INC)’ 게임은 155개국 가운데 80개국의 애플 앱스토어 유료 앱 순위(카테고리 통합) 1위에 올랐다. 이 게임의 목적은 전 세계에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것이다. 이 게임은 일종의 시뮬레이션처럼 진행된다. 이처럼 우리가 살고있는 우주 시뮬레이션의 목적이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바이러스 탓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사실상 생각을 할 수 있는 뇌가 없다. 인간이 동물과 만날 일이 많아지고, 면역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는 동물들이 대규모 사육되고 있는 현실에 맞게 바이러스가 진화해 가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 처럼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현실은 바이러스 탓이 아니라 인간들의 선택이다.
만약 인류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을 계속 가게 된다면, 웬만한 종들을 넘나들 수 있는 바이러스가 지구에 넓게 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바이러스에 의해서 많은 인간과 동물들이 죽을 것이다. 결국 웬만한 종들을 넘나들 수 있는 바이러스에 취약하지 않은 개체들만이 지구에 남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개체들은 조금씩 조금씩 진화를 하게 되어 다양한 생물들이 지구를 다시 채워나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류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지구의 관점에서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미 지구는 오르도비스기 대멸종, 데본기 대멸종, 페름기 대멸종, 트라이아스기 대멸종, 백악기 대멸종을 경험했다. 6번째 대멸종을 경험한 뒤, 종을 뛰어넘는 바이러스들이 남은 지구가 될 뿐일 수도 있다. 떨어지는 운석을 피하지 못 한 공룡들이 운이 없었던 것처럼, 어쩌면 지금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들이 운이 없는 것일 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대멸종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 이 대멸종은 불공평하다. 과거의 대멸종은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경험하게 될 대멸종은 인류의 선택이다. 이 선택은 주로 소수의 권력을 쥔 사람들이 하게 된다. 이 소수의 사람에 의해서 수많은 생명체가 죽게 되는 것은 너무나 불공평하다. 특히나 권력자인 일론 머스크가 화성에 가서 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는 권력을 쥔 사람들에게나 유의미한 이야기다. 대부분의 생명체와 권력이 없는 사람들은 화성으로 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지구를 대멸종으로 끌고 간 사람들은 살아남고, 이 지구가 대멸종으로 가지 않도록 노력하는 존재들은 죽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우리는 놓였다. 그렇기 때문에 시뮬레이션 우주론을 접했을 때 ‘이 우주가 시뮬레이션이라면, 이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존재는 사이코패스다.’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억울하게 멸종되고 있는 종들이 있고, 억울하게 죽임당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결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인류는 멸종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우주가 시뮬레이션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 이 생각들은 소중하다. 이 고통은 아프다. 이 슬픔은 슬프다. 억울한 고통과 슬픔이 없는 세상을 위해서 노력하는 이유다. 만약 6번째 대멸종의 이름 붙일 수 있다면, ‘인류세 대멸종’이라는 이름 대신, ‘억울한 대멸종’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Agüero, M. et al. Eurosurveillance 28, 2300001 (2023).
Reference
글쓴이: 이권우
2012년부터 동물과 관련된 활동을 시작했고 생명과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시민단체 직원으로 2년의 시간을 보냈고 호주에서 2년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방랑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