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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스 Jun 03. 2022

자동차 전용 구역

(픽션) 자동차를 대하는 다른 방법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자동차는 철저하게 규제되기 시작했다. 규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자동차 전용 구역에서만 자동차를 탈 수 있다.


자동차 전용 구역은 어떤 동물도 들어갈 수 없도록 천장과 양옆이 막혀 있어 꽤 답답하게 생겼다. 유리를 인식하지 못하는 새가 부딪히지 않도록 자동차 전용 구역은 삭막한 회색 철창으로 되어 있다. 할머니로부터 과거에는 어디에서나 차를 탈 수 있다고 들었다. ‘로드킬’이라는 것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CW(Car is weapon, 자동차는 무기다) 캠페인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면서 지금의 자동차 전용 구역이 생겨났다고 한다.



자동차 전용 구역이 생겨나서 로드킬만 없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 자체도 많이 바뀌었다. 차가 없어지면서 도시는 더 이상 소음으로 가득한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소음이 사라져서인지, 차가 사라져서인지 많은 동물들이 도시에서 살아간다. 특히나 고양이를 키우는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고양이는 각자의 영역을 돌아다니다가 반려 인간의 집에 가서 잠을 청하고 밥을 먹는다. 강아지들 또한 목줄 없이 자유롭게 뛰어다닌다. 강아지도 고양이도 사람을 보고 짖거나 공격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이 더 교육을 잘해서 그런지, 아니면 언제나 도시를 뛰어다닐 수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없어져서 그런지는 모른다. 사람을 공격할 시간에 신나게 뛰어다니는 것이 더 재밌기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오늘은 지리산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로 한 날이다. 서울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지하철을 주로 이용했지만, 지리산에 가기 위해서 오랜만에 자동차 전용 구역을 이용해야 한다. 지하철을 타고 자동차 전용 구역에 가서 시외버스를 탔다. 과거 지리산 국립공원 안에는 자동차 도로가 있었고 그 도로 위에서 수 많은 동물들이 죽었다. 이런 지리산을 기억하고자 국립 공원 안에는 자동차 전용 구역이 없고 지리산 주변의 자동차 전용 구역 또한 최소화했다. 나는 구례에 내려서 18km 정도를 걸어가야지만 친구네 집에 도착한다. 


지리산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급자족한다. 친구들의 조상들은 먹거리를 자급자족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전기, 교육, 인적 네트워크 등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지리산을 차로 누빌 수 없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서 만들어지는 먹거리와 에너지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현재를 살고 있는 나에게 과거를 상상하기란 참 어렵다. 어디에나 차가 있으면, 언제나 사람도 동물도 죽을 수 있을 텐데 불안해서 어떻게 살아갈까? 그토록 시끄러운 자동차들이 항상 지나다니면 귀는 언제 쉴 수 있을까?


인류는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도 극보수들이 자동차 전용 구역을 폐지하자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도로 위에서 차에 치여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언젠가는 차가 사라지길 바란다. 인류의 역사에서 자동차는 1886년에 등장했다. 몇백 년 밖에 차를 사용하지 않은 인간은 왜 차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일까? 편리함에 중독된 것일까? 과연 무엇이 퇴보고 무엇이 진보인 것일까?



글쓴이: 이권우

2012년부터 동물과 관련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유기동물 보호소에 가보았고, 동물과 관련된 행사를 여러 차례 기획했습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는 한 동물권 단체 직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이후 호주에 가서 초원 위 동물들을 만났습니다. 작년 1월 말 한국에 귀국하여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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