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들의 시간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는 근래의 큰 일을 겪기 전까지는
마음이 아프다는 걸 잘 몰랐어.”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나는 오래도록
아이가 나로 인해 얼마나 아팠을지를
생각해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통 속에서 아이를 키웠다.
삶은 늘 버거웠고,
마음은 자주 한계선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엄마가 되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이 험한 세상에서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으라고.
나는 아이를
가능한 한 유능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능력이 있어야
덜 아플 거라고 믿었고,
아프더라도
견딜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양육’이라는 이름의 것들을
아이에게 빠짐없이 건네려 했다.
아이의 지능을 발달시키려 애썼다.
신문을 스크랩하게 했고,
함께 신문을 만들기도 했다.
살아 있는 역사 공부를 위해
아이와 유적지를 직접 탐방했고,
악기와 운동을 시켰으며
많은 동시를 외우게 했다.
아이는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지금의 나는 안다.
그 양육이 얼마나 침범적이었는지,
얼마나 아이의 마음보다
내 불안을 먼저 달래고 있었는지를.
심리와 발달을 배우며
나는 비로소
내가 아이의 삶을 돕고 있다기보다
앞질러 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다.
아이는 사춘기를
몹시 거칠게 통과했다.
반항적이었고, 공격적이었다.
그 시간은
나에게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고,
그제야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늘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변화하고 성장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
내가 변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심리를 공부했고,
나를 분석했고,
내 불안을 직면했고,
아이에게 했던 침범을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아들과 나의 관계는
조금씩 회복되었다.
그럼에도
내 마음 한켠에는
늘 남아 있던 생각이 있었다.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니었어.'
그래서 오늘,
아이의 말이
더 나를 놀라게 했는지도 모른다.
“엄마,
나는 근래의 큰 일을 겪기 전까지는
마음이 아프다는 걸 잘 몰랐어.”
그 말은
고통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고통이 삶 전체를
삼키지 않았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나는 늘
그 아이가
삶 자체를 고통으로 느끼며
살아왔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게 되었다.
심리를 공부하며
나는 ‘자기 응집력’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자기 응집력은
고통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고통 속에서도
‘나라는 감각’이 흩어지지 않는 힘이다.
자기 응집력이 있는 사람에게
고통은 아프지만
존재를 위협하지는 않는다.
고통은 경험으로 남고,
지나갈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나는
아이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려다
오히려 많은 고통을 주었지만,
아이를 ‘무능한 자기’로
남기지는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아이는
부딪혀도 다시 설 수 있었고,
버텨본 자기의 감각을 가지고 있었고,
관계가 무너져도
다시 다뤄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완벽한 엄마는 아니었지만,
스스로에 대해 알고자 하고,
변화하고 성장하려 애쓰는 엄마였고,
그 변화는
아이의 삶 안에
하나의 가능성으로 남았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내가 저지른 침범을
가슴 아파한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들의 고통을 막아주지는 못했지만,
아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결과적으로는 허락한 엄마였다고.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구조는
완벽한 양육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가 다시 다뤄진 경험 속에서
조금씩 자란다.
나는
한 아이를 키우며
나 자신을 키웠다.
그리고 그 아이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내며
살아가고 있다.
좋은 엄마가 되어주지 못했음에도,
각자의 삶을
존재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아들과 딸들에게
오늘은
한없이 미안하고,
또 한없이 고마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