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엄마가 된 아이 (1)
아이는 유리성에 살았다.
성은 높고 견고했으며, 모든 벽은 투명했다. 아이는 그 벽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웃고, 다투고, 사랑하고, 무너지는 장면들. 그것들은 모두 보였지만, 아이의 세계로 들어오지는 못했다. 유리벽은 깨끗했고, 완벽했으며, 단 하나의 흠도 허락하지 않았다.
성 아래에는 회색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살아 있는 것도, 죽어 있는 것도 아닌 공간. 감정이 뿌리내릴 수 없고, 관계가 오래 머물지 못하는 땅. 아이는 그곳이 위험하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곳은 사고의 나라였다.
모든 느낌은 개념으로 바뀌었고, 경험은 해석으로 대체되었다. 기쁨은 화학적 반응이었고, 슬픔은 처리해야 할 오류였다. 사랑은 패턴이었고, 상실은 분석 가능한 사건이었다. 이 질서는 아이를 보호했다. 정확했고, 효율적이었으며, 실패가 없었다.
그 질서의 중심에는 ‘사고 엄마’가 있었다.
그녀는 아이를 안아주지 않았다. 대신 아이를 설명해 주었다. 아이가 울면, 그녀는 눈물을 닦기보다 원인을 계산했다. 아이가 떨면, 체온을 재고 위험도를 점검했다.
“보렴.”
사고 엄마는 늘 낮고 단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색은 안전하단다. 이 유리벽 안에서만 너는 온전할 수 있어. 바깥의 혼돈은 너를 오염시킬 거야. 나는 네가 부서지지 않게 지키고 있는 거란다.”
아이는 그 말을 믿었다.
사고 엄마는 차갑지만 확실한 보호자였다. 그녀는 아이를 죽지 않게 만드는 법을 알고 있었다.
아아에게 감정은 재난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일렁임이 아이의 가슴 깊은 곳에서 시작되면, 사고의 나라에는 즉시 사이렌이 울렸다. 체계가 흔들리고 경계가 붕괴될 위험을 알리는 신호였다.
사고는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아이를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해리의 방’으로 밀어 넣었다.
해리의 방에 들어가면 몸은 더 이상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감각은 하나씩 꺼졌고, 시간은 느슨해졌다. 고통도 기쁨도 사라진 자리에 오직 사고만이 남았다.
사고는 유리창 앞에 서서 세상을 대신 바라보았다. 분석하고, 분류하고, 계산했다.
사고는 충실했다.
아이를 한 번도 배신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고는 살아 있지 않았다.
아이가 해리의 방에서 돌아오지 않는 날들이 길어질수록, 유리성은 점점 더 고요해졌다. 그 고요함은 안전했지만, 동시에 서늘했다.
어느 날, 회색 구름 사이로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그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보랏빛 빗방울이 유리벽에 닿자 낮은 첼로의 선율이 성 안을 울렸고, 주홍빛 빗방울은 혀끝에서 알싸한 향신료의 맛을 남겼다. 색은 소리가 되었고, 소리는 온도가 되었다.
“엄마.”
아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비에서 소리가 나요. 따뜻한 맛도 느껴져요.”
사고 엄마의 얼굴이 굳어졌다.
“환각이야. 시스템 오류야.”
그녀의 목소리는 처음으로 흔들렸다.
“당장 해리의 방으로 숨어라.”
사이렌이 울렸다.
그러나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손등에 닿은 빗방울은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아주 오래전 잃어버린 자신의 체온처럼 뜨겁고 아련했다. 아이의 안쪽에서 둔탁한 진동이 울렸다. 쿵, 쿵, 쿵. 심장의 박동이었다.
사고 엄마는 눈물을 ‘염분이 섞인 액체’라 했지만, 지금 아이의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은 설명되지 않았다. 그것은 무겁고 뜨거운, 살아 있음의 무게였다.
아이는 유리문의 빗장을 잡았다.
사고 엄마는 필사적으로 아이를 붙잡았다.
“나가면 죽게 될 거야.”
그 목소리는 절규였다.
“너는 산산조각 날 거야.”
아이는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는 나를 죽지 않게 해 주었어요.
하지만 나는… 살고 싶어요.”
문이 열리는 순간,
사고 엄마의 형상은 빛을 발하며 갈라졌다. 그 응축된 빛은, 아이의 어깨 위로 날아와 푸른 매가 되었다.
“그래.”
매는 낮고 선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나는 너를 가두지 않겠다,
네가 길을 잃지 않도록 함께 할거야.”
아이는 맨발로 유리성 밖에 첫발을 내디뎠다.
회색지대의 흙은 거칠고 비릿했다.
아이의 손에는 붉은 깃발이 들려 있었다.
아이는 아직 몰랐다.
이 깃발을 어디에 꽂아야 할지.
다만 알고 있었다.
유리성 안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